곽수진 간호사님은 아주대학교 응급전문간호학 석사수료, 2020년도에 응급전문간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2012년부터 현재까지 서울 광진구의 건국대학교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신규 간호사를 위한 실무 도서인 “프셉마음: 응급실편”의 저자이고, 실제 응급실에서의 이비인후과 관련 에피소드들을 간호사의 관점에서 생생하게 이야기해드립니다.
소개에서 말했듯 저는 서울에 위치한 지역응급의료센터에서 11년째 응급실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공간이 있는데요. 바로 환자 분류소(Triage room)입니다. 중증도를 분류하는 공간이자 환자가 응급실에 내원하여 제일 먼저 마주하는 공간입니다. 이곳에서는 한국형 중증도 분류체계(KTAS)를 통해 환자 분류(Triage)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한정된 응급의료 인력과 의료자원을 중증도가 가장 높은 환자에게는 가능한 한 빨리 제공하고, 중증도가 낮은 환자는 안전하게 대기할 수 있도록 만드는 체계입니다. KTAS를 이용한 응급환자 분류 과정은 첫인상 중증도 평가(critical look), 주 증상 파악, 활력 증후 측정의 순서로 진행되며, 이외에 환자의 연령, 증상의 대분류, 증상의 소분류 및 세부 판단 기준의 4단계 판정 절차에 따라 환자를 분류합니다. 결과에 따라 1~5단계로 분류할 수 있으며, 이 중 KTAS1~3단계를 중증으로 정의합니다.
그렇다면 응급실에 내원하는 이비인후과 환자들의 중증도는 어떨까요? 그러려면 응급실에 내원하는 이비인후과 환자가 주로 어떤 증상으로 내원하는지 알아봐야 하는데요. 국가응급의료 정보망 (National Emergency Department Information System, NEDIS)에서 지난 5년간 (2018년~2022년 6월) 이비인후과 다빈도 주 증상을 확인한 결과 1위는 Dizziness, 2위는 Throat pain, 3위는 Epistaxis로 집계되었습니다.
먼저 Dizziness는 응급실 내원 전체 환자 중 약 3.5% 정도를 차지하는 아주 흔한 증상입니다. 타 증상과 비교 시 더 많은 진찰과 검사, 더 긴 응급실 재원 시간, 더 높은 입원율을 가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다양한 동반 증상 중 하나이기 때문에 모든 어지럼증 환자가 이비인후과 환자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수의 경증 환자부터 뇌 신경계 이상의 중증 환자까지 넓게 관찰되는 어지럼증의 KTAS의 분류 단계는 먼저 신경과-어지럼증으로 구분된 후 자세 변화에 의한 경우 3등급, 그렇지 않은 경우 2등급으로 분류되어 각각 이비인후과, 신경과에 협진 의뢰가 됩니다. 후자의 경우 뇌경색의 초기 증상으로 간주하여 FAST track이 활성화되고 뇌졸중 전문 치료팀(stroke team)이 호출됩니다.
두 번째로 응급실에 많이 내원하는 주 증상은 Throat pain입니다. Throat pain은 2019년도까지는 응급실 내원 다빈도 주 증상 40위 안에 들었지만, 2020년도 이후에는 코로나 유증상으로 선별 진료소 진료군 분류되어 실제 응급실에 내원하여 이비인후과 협진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사실 응급실에 내원하는 이비인후과 환자들은 주로 중증도가 높지 않은 환자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예를 들어, 코에 구슬을 넣고 수줍게 걸어 들어오는 아이들, 귀에 벌레가 들어가 당황한 어른들, 목에 가시가 걸린 어르신이 생각납니다.
반면 간호사에게 실제 중증도 못지않게 '심리적' 중증도가 높은 환자도 있습니다. 바로 세 번째 다빈도 주 증상인 비출혈 환자입니다. 비출혈로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들은 단순히 5~10분 전 발생한 비출혈로 응급실까지 내원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충분한 시간 동안의 사투 끝에 지혈이 되지 않아 내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략 30분에서 1시간 이상의 지속된 출혈, 적절한 압박에도 멈추지 않는 다량의 출혈 등으로 내원하다 보니 도보로 내원하는 환자뿐 아니라 119를 타고 내원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비출혈의 중증도를 예상하면 그렇게 높지 않을 거라 생각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비출혈 중에서도 '적절한 압박에도 지혈되지 않는 출혈'은 KTAS 2단계(10분 내에 의사의 진료가 요구)로 분류됩니다. 중증도 분류 후, 보통 인턴 선생님이 초진을 보면서 Bosmin packing을 적용하는데 대부분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공들여 packing 한 게 무색할 만큼 30초도 되지 않아 출혈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죠. 이는 빠른 처치로 지혈을 기대했던 환자와 보호자의 긴장감을 높여 조급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피를 흘리는 장면을 목격하는 주변의 환자들에게도 불안감을 조성합니다. 보통의 경우, 인턴 선생님이 노티 하자마자 바로 이비인후과 외래로 보내달라는 답변이 오지만, 종종 외래가 바쁜 경우에는 콜이 늦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속되는 출혈로 지쳐 힘들어하는 환자, 언제까지 계속 기다려야 하냐며 다그치는 보호자, 울리지 않는 전화기, 바로 간호사의 '심리적' 중증도가 높아지는 순간이죠.
부디 앞으로 비출혈 환자의 노티를 받으신다면, 보호자의 거친 생각과 환자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간호사의 전쟁 같은 응급실 상황을 떠올려주시며 조속한 답변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유형의 중증도 높은 경우를 이야기해 볼까요? 응급실 간호사들이 가장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이비인후과 응급상황은 바로 Airway 문제로 내원하는 환자들입니다. 대표적으로 T-tube change나 Epiglottitis 환자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최악의 경우, 기관절개부터 심정지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상황에는 보통 E-cart부터 Ambu bag, Defibrillator, Cricothyroidotomy set까지… 응급실에서 준비할 수 있는 모든 이비인후과 관련 set를 준비합니다. 또한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처치가 아니기 때문에 시술하는 전공의가 환자 처치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 밖의 모든 상황에 대해 수많은 경우의 수를 떠올리며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최근에 후두암 환자가 기관삽관 후 기계환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환자는 코로나 양성 환자였기 때문에 음압격리실에서 레벨 D를 포함한 5종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Intubation을 해야 했습니다. 기관삽관이 안될 경우 crico를 시행할 수도 있고, CPR 상황까지 준비해달라는 담당 이비인후과 전공의의 말을 들으니 코로나 양성 환자의 비말에 노출이 되는 데다가 불편한 몸으로 응급상황에도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에 11년 차인 저도 긴장이 많이 되더군요. 코로나에 노출되는 의료 인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비인후과 전공의 2명, 저를 포함한 간호사 2명이 격리실로 들어갔습니다. 각종 기계들로 좁아진 공간에서 덥고 숨차고 차오르는 입김에 시야 확보마저 잘 안되는 상황에서 “에이, 선생님~ 보호자분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제가 잘할게요”라고 말하는 전공의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날 선 긴장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시술은 응급상황 없이 잘 마무리되었고 환자도 안정을 되찾아 입원하였습니다.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에 자주 겪어보지 못한 이비인후과 응급상황이어서 기억에 많이 남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비인후과 선생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저는 주로 차분함, 침착함, 섬세함, 환자와 보호자에게 친절함 등등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점은 이비인후과는 제가 있던 10년 동안 응급의학과 전공의, 응급실 간호사와 큰 마찰이 없는 유일무이한 과라는 것입니다. 사실상 기적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어요. 매일 매 근무마다 다양한 과의 의료진과 의사소통해야 하는 응급실에서는 약간의 마찰은 늘 불가피하게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이비인후과와는 단 한 번의 사소한 마찰이나 불편함조차 겪어보지 못했는데요.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그 이유가 이비인후과 전공의가 귀 코 목을 주로 진료하는 의사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귀! 잘 들어주고, 코! 분위기를 잘 감지하고, 목! 잘 말하는 센스를 가지셨다 봅니다. 물론 더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요. 보통 이비인후과 환자들의 진료는 응급실이 아닌 이비인후과 외래에서 이뤄지다 보니 의료진끼리 직접 대면하는 경우가 드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을 더 배려 하는 태도와 언어도 마찰 없는 의사소통에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비인후과와 내적 친밀감이 높은 편입니다. 바로 제 커다란 편도선 때문인데요. 어린 시절부터 편도선으로 환절기 때마다 3~4일씩 지속되는 고열과 통증으로 고생하는 이비인후과 단골 환자입니다. 신규 간호사 시절에는 증상을 참고 꾸역꾸역 일하다가 이비인후과 진료를 보는 환자를 따라가 목에 가득 찬 Exudate를 제거하고 오기도 했습니다. 전공의 선생님들은 염증이 나아지면 이번에는 꼭 수술을 하자며 수차례 권유했으나, 그때마다 편도선 수술 후 과다출혈로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들을 목격하고 지레 겁을 먹어 몇 번이고 선택을 보류했습니다.
지금은 거대한 편도선의 주인으로서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며 나름의 목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수술할 용기를 가지게 되었을 때 이 글을 읽은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면 정말 반가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