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프린팅은 이미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여러 제약으로 널리 사용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진료 및 학술 활동을 활발히 하고 계신 경희대학교 치과대학 구강악안면외과 이정우 교수님을 섭외하였습니다. 3D 프린팅의 기본 개념과 임상 적용에 관한 글로, 관심 있는 선생님들께 작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1984년 개발된 3차원 프린터는 2014년 글로벌 기업들의 3차원 프린터 관련 특허권들의 만료로 빠르게 대중화되었습니다. 특허권 소멸 후 초반에는 3차원 프린팅 기술을 본인의 전공에 도입하고자 하였던 연구진, 제품 생산을 위해 사용하고자 하였던 산업계뿐 아니라, 피규어와 같은 취미생활에 사용하고자 하는 개인들까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용하기를 원했습니다. 의료계에서도 역시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고자 하였습니다. 진단을 위해 사용되는 CT, MRI와 같은 영상들은 0.5~3mm의 단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단면들을 연결하면 3차원 영상이 되는 것과 같은 원리인 3차원 프린팅 기술은 의료용 모델 제작에 가장 쉽게 사용되어 왔습니다. 3차원 프린터뿐 아니라 프린팅을 위한 재료들 역시 빠르게 발전하여, 광경화레진, 티타늄 파우더, 바이오잉크 등 다양한 재료들이 다양한 분야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의료 영역에서 직/간접적으로 흔하게 접하지만, 용어의 통일이 되지 않아 혼란스러운 3차원 프린터, 프린팅 관련 용어, 3차원 프린터가 의료에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미래를 예상하는지에 대하여 의료상황에 대입하여 교양적인 수준에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3차원 프린팅에 대해 아주 얕게 알아보기
치과, 특히 양악수술 (orthognathic surgery) 및 안면 재건 수술을 하는 구강악안면외과에서는 RP (rapid prototyping)이라는 기술을 1990년 초반부터 사용하여 왔습니다. 저 역시 전공의 시절에 수술 스케줄이 확정되면, 촬영한 CT를 업체에 전송하고, 업체에서는 택배로 RP를 보내주었습니다. 2차원인 CT보다는, 3차원인 RP가 해부학을 이해하기도 좋고, 잘라보는 모의 수술 등을 통해 실제 진단 및 수술 시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림 1). 여기서 RP는 3차원 프린팅을 이용한 결과물을 의미합니다. 여전히, 많은 의료진들은 3D 프린팅을 이용한 의료 모델을 RP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림 1. CT를 이용하여 3차원 프린팅을 시행하여 만든 RP와 모의 수술 및 실제 수술
우리가 원하는 RP를 만들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단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CT를 업체로 전송하게 되면, 업체에서는 2차원 CT를 컴퓨터상에서 3차원 모델로 변환하게 됩니다. 이를 3차원 모델링이라고 합니다. 병원마다 CT의 slice 간격이 다르나 (대부분 0.5~3mm 정도), 당연히 slice의 간격이 작을수록 보다 정확한 모델을 만들 수 있습니다. CT를 촬영하면, 실제 필요하지 않은 부분이 동시에 촬영됩니다. 하악골을 수술하고 싶은데, 상악골뿐 아니라 두개골과 척추 및 조영촬영을 한 경우에는 혈관들까지 매우 다양한 부분들이 나옵니다. 여기서 하악골만을 분리해내는 과정을 segmentation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segmentation은 수작업이 매우 많이 들어가고, 시간이 소요됩니다. 최근에는 AI 기술 특히 딥러닝을 이용하여 자동화하려는 연구가 많습니다. CT와 같은 의료영상을 3차원 모델로 만들어주는 다양한 소프트웨어가 있습니다. 벨기에의 Materialise의 MIMICS의 경우 다양한 기능, 자동화 등으로 매우 좋은 소프트웨어이나,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진료실에서 구입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ITK-SNAP, 3D Slicer, OsiriX (Mac용) 등의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는 무료로 사용할 수 있으나, 사용법이 좀 어렵습니다. 최근에는 구글링을 통해 사용법을 익힐 수 있기 때문에 추천을 드립니다.
3차원 모델링이 완료되면, 이를 즉시 3차원 프린터에 넣어 출력하고 싶을 경우에는 3차원 모델을 STL 등의 파일로 변환하게 됩니다. STL 파일은 3D Systems라는 글로벌 기업에서 개발한 파일 포맷으로 standard triangulation language의 약자입니다. 현재는 3차원 프린팅을 위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파일 포맷으로 표준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3차원 프린팅의 작동 방식은 앞서 2차원 CT를 3차원 모델링을 하는 방법의 반대로 생각하면 됩니다. 3차원 모델을 2차원 slice로 쪼갠 sliced model을 만들고 이를 3차원 프린터에 전송하면 2차원 단면 모델을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서 3차원 형태로 만들게 됩니다. 최근에는 3차원 프린터에 STL 파일을 넣으면 이 과정들을 자동으로 지원해 줍니다. 교양 차원에서 3차원 모델을 쪼개는 소프트웨어를 slicer (슬라이서)라고 하며, 슬라이싱 후 3차원 프린터에게 어떻게 프린팅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제어 코드를 G-code라고 합니다.
그림 2. STL 파일, Slicer 및 3D 프린팅 과정 (출처: doi: 10.1016/j.arabjc.2020.09.020)
다음 단계가 3차원 프린팅 단계입니다. 3차원 프린터는 출력방식에 따라 매우 종류가 다양합니다. 가장 흔하고, 저렴한 FDM (fused deposition modeling) 방식은 고체 출력 필라멘트를 열을 가해 녹여서 한 층씩 쌓아 올리는 방법을 이용합니다. FFF (fused filament fabrication)는 상표권 때문에 만들어진 용어로, FDM과 동일한 방식입니다. 최근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식으로 SLA와 DLP 방식이 있습니다. SLA (Stereo Lithography Apparatus), DLP (Digital Light Processing) 모두 광경화성 레진을 이용하나, SLA는 레이저를 이용하여 선을 그려서 수조에 담긴 광경화성 레진을 겹겹이 굳혀가는 방법이며, DLP는 빔프로젝터와 같이 3차원 형상을 각 층에 한 번에 나타내어 한 층을 굳혀나가는 방식입니다. 실제 DLP 3차원 프린터는 빔프로젝터의 광원을 뜯어내어 DIY 하는 것이 유행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나일론이나, 금속분말을 3차원 프린팅할 때 많이 사용되는 SLS, 컬러 출력이 가능한 CJP, 의료 모델 출력에 사용되는 MJP방식 등이 있습니다.
그림 3. 대표적인 3차원 프린팅 출력 방식 (출처 DOI: 10.24867/GRID-2018-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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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 프린팅과 3차원 시뮬레이션
의료 3차원 모델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 같습니다. 2009년부터 컴퓨터상에서 모의 수술을 진행하고, 이 모의 수술 결과를 실제 수술방에서 재현하기 위한 연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들은 존슨앤드존슨 (Synthes)-Materialise, 스트라이커-3D systems 연합이 주도하였습니다. 3차원 모델을 컴퓨터상에서 모의 수술하는 과정을 시뮬레이션 수술이라고 흔히 말하고 있으며, 논문상에서는 VSP (virtual surgical simulation), computer-aided surgical simulation이라는 용어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VSP의 결과를 실제 수술실에서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이 장치를 3차원 프린터를 통해 출력하고 있습니다. 이 장치는 surgical guide, surgical guidance 등의 용어로 불리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하악골 재건술의 경우에 2021년 4월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들의 경우 한 케이스에 1,000만원이 넘는 금액과 제작 및 배송기간 (약 3주), 그리고 식약처 인증이 되지 않아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국내 몇몇 기업에서 제작을 하는 곳이 있으니, 관심이 있으신 선생님들께서는 사용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림 4. 3차원 모델링, VSP 및 수술 가이드 (surgical guide)를 이용한 수술
재생 의료와 3차원 프린팅
첨단 의료인 재생 의료 분야에서도 3차원 프린팅 기술은 매우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2011년 TED에서 Anthony Atala는 실제 강의장 뒤에서 인공장기를 3차원 프린팅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충격을 주었습니다. 재생 의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스캐폴드를 3차원 프린터를 이용하면 다양한 재료로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연구자들이 뼈, 연골, 혈관, 신경 등을 3차원 프린터를 이용하여 만드는 것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현재는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우선, 가장 흔하게 연구 및 사용되는 분야는 뼈인데, 강도가 약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힘을 받는 부위에는 사용할 수 없는 단점이 있습니다. 저희는 이를 free flap과 같이 사용하여 심미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은 경험이 몇 예 있는 정도입니다.
나가며
3차원 프린팅 기술은 이미 유행이 지난 성숙한 분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임상 적용에 있어서는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입니다. 부디 제 허접한 글이 선생님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