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부산에서 ‘핑 이비인후과 의원’을 개원하고 있는 의사로서, 크게 내세울 것은 없으나 일반적인 이비인후과 개원의보다 좀 더 어지럼에 집중된 셋팅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개원한지 2년 3개월 정도 지난 새내기 개원의로서 부끄러운 것도 많지만 저의 병원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합니다.
저는 이비인후과 전문의 5명, 마취과 전문의 1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올해 개원 20주년이 된 이비인후과 전문 병원, 마산 예일 이비인후과에서 봉직의 2년, 공동원장으로 4년을 근무하고 2018년 6월 부산에 ‘핑 이비인후과’를 개원하였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어지럼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어지럼이라는 것이 이석증 같이 진단이 명확하고 쉬운 질환도 있으나, 똑같은 환자의 증상과 검사 결과를 두고 의사에 따라 다른 진단을 내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비전형적이거나 초기 메니에르, 신경성 어지럼 등은 의사에 따라서 진단이 많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어지럼 질환의 특징이 진료의 어려움이기도 하지만 안개 속 같은 환자의 어지럼이 저의 진단과 치료로 호전될 때 의사로서 보람도 큰 것 같습니다.
어지럼 환자분들이 어느 과를 가야 할지도 모르고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으신 것을 보고 환자들이 쉽게 기억하고 접근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병원 설립의 목적이었습니다. 어지럼 전문을 나타내기 위해 '핑 돈다'고 표현할 때의 부사인 ‘핑'을 사용하여 ‘핑 이비인후과’로 병원 이름을 정하였습니다. ‘핑 이비인후과’의 지향점은 「어지럼과 두통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믿고 찾을 수 있는 최고의 병원이 된다」 로 정하고, 병원 경영의 철학은 「첫째, 어지럼과 두통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의 치료에 집중하여 환자의 행복한 삶에 도움을 준다. 둘째, 병원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삶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병원이 된다.」 로 정하였습니다. 두통에 관한 내용은 글이 길어질 것 같아 어지럼에 집중하여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비인후과 1인 병원 치고는 조금 큰 면적인 실평수 110평을 임대하고 개원 당시에 비디오안진검사(VNG), 전기안진검사(ENG), 자율신경계(Autonomic function test) 검사 및 기립경검사(tilting table), 청력검사, 전정유발근전위검사(cVEMP, oVEMP), 전기와우도검사(ECoG), 동적자세검사(Dynamic posturography), 회전의자검사(Rotatory chair test), 청성뇌간유발검사(ABR), 비디오두부충동검사(vHIT), 시수직/수평검사(SVV/SVH)를 셋팅하였으며, 이석증 환자의 위험 인자의 감별을 위해 골밀도 검사(BMD)도 구비하였습니다. 이명과 두통 치료를 위해 경두개자기자극술기(rTMS), 돌발성 난청 및 두통 치료를 위해 고압산소치료기(HOT), 두통 및 만성 어지럼 환자의 후두부 통증 치료를 위해 TENS 치료를 갖추었으며, 어지럼 환자의 전정재활치료(VRT)를 위해 전정재활실을 마련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이비인후과 질환의 진단을 위해 부비동 CT, 폐기능검사, 심전도 검사, 초음파 검사 또한 셋팅 하였습니다. 어지럼 검사는 할 수 있는 셋팅은 최대한 한 것 같습니다. 치료도 일반 개원가에서 하기 힘든 경두개자기자극술, 고압산소치료를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지나고 보면 이런 많은 셋팅이 가성비로 따지면 하지 말았어야 할 것도 많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현재 크게 후회는 없습니다.
<건물외벽 광고>
하지만 개원 초기의 자신감은 녹록치 않은 현실 앞에 걱정과 불안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초기에 내원 환자 수는 쉽게 늘지 않았습니다. 출근을 하면 직원들만 보이고 큰 로비는 텅 비어 있기 일쑤였고, 점심시간을 마치고 진료를 시작하면 대기 환자가 한 명도 없는 날들이 지속되었습니다. 거리를 나가보면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으나 막상 병원을 내원하시는 환자는 많지가 않았습니다. 개원 초기에는 환자가 없고 힘들 것이라고 예상을 하였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고 보니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환자는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위안하며 직원들과 같이 어지럼 공부도 하고 블로그에 글을 쓰기도 하면서 버텨 나갔습니다. 1층과 건물 곳곳에 진료 과목을 어지럼, 두통만 적어 놓고 내원 환자도 적다 보니 1층에 있는 약국에서도 일반적인 이비인후과 질환도 광고를 하고 진료를 봐야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을 하였습니다. 물론 감기 환자를 안 보는 것이 아니라 환자 분들이 알아서 잘 내원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어지럼 진료를 받으신 환자 마저도 감기도 같이 보냐고 물어볼 정도였습니다. 환자들의 인식이 그 정도로 강하다는 것이 제가 의도한 바이기는 하였으나 병원 초기에는 경영의 어려움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 병원이 감기 환자로만 붐비게 되면 병원은 유지하기 힘들 것이고 핑 이비인후과의 지향점 또한 아니라고 직원들과 저 자신에게 말하면서 버텨 나갔습니다.
원고를 준비하면서 개원 초기에 쓴 글을 보았습니다.
2018년 11월 16일 (개원 158일, 만 5개월 4일)
아직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어제는 어지럼 환자가 12명 밖에 되지 않았다.
어지럼 환자 신환은 2명.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불안감이 생긴다.
이러한 불안감이 조금 없어지고 안정감이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짧은 글만 보아도 저의 불안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새삼 당시의 제가 많이 힘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2년이 조금 지난 현재는 아침에 출근을 하면 기다리시는 환자 분들이 있는 날이 더 많고, 점심 시간 이후 오후 진료 시작 시에 대기 환자가 없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환자를 많이 보시는 선생님들께서는 이러한 상황이 너무나 당연하겠지만, 이런 당연한 상황이 된 것이 개원 후 1년도 한참 지나서 였던 것 같습니다. 현재는 검사 수가 증가하여 VNG가 1대에서 3대로 늘어났으며, 청력검사 부스도 하나에서 두개로 ABR도 1대에서 2대로 늘어났습니다. 수익이 나는 대로 거의 재투자를 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직원 4명(간호조무사 2명, 임상병리사 2명)으로 시작을 하였는데 현재는 신경과 의사 1명과 직원 11명(간호조무사 5명, 임상병리사 5명, 식당아주머니 1명)으로 병원의 규모가 성장을 하였습니다. 더욱이 신경과 의사와 협진을 하면서 어지럼, 두통 진료에 있어서 조금 더 전문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비인후과 의사인 저로서는 중추성 어지럼의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항상 긴장을 하게 되는데 중추적 원인이 의심되는 경우에 신경과와 협진을 통해 정확한 진단을 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일주일 전부터 발생한 어지럼을 주소로 내원하신 60대 환자 분이 타병원에서 약을 드셔도 어지럼이 지속되어 내원하셨습니다. 이학적인 검사 및 전정기능 검사 상에는 특이 소견을 발견할 수가 없었는데, 제가 질문을 하면 약간의 시간을 두고 대답을 하셔서 저는 ‘약 기운에(타병원에서 처방 받은 보나링과 디아제팜을 복용하고 계셨습니다) 대답이 늦으신가보다' 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말초적인 특이 소견이 보이지 않아 신경과 협진을 하니 바로 이런 증상이 Dysarthria라고 하였습니다. Dysarthria가 말이 잘 안되고 어눌한 것이라고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들으니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이 환자 분은 바로 타병원에 의뢰하여 뇌경색으로 진단을 받고 입원 및 약물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신경과 선생님 소견으로는 다행히 큰 후유증은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저만 진료를 보았다면 놓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현재 핑 이비인후과를 내원하시는 환자의 구성은 40%가 어지럼 환자이며, 20~30%환자는 이명 등의 이과 질환의 환자입니다. 상기도감염 환자는 10% 미만이며, 소아는 거의 0%에 가깝습니다. 수 개월에 한 명씩 소아 환자가 내원하는데 직원들은 소아 환자가 울거나 움직일 때 어떻게 잡아야 되는지를 잘 몰라 당황할 정도입니다. 이비인후과는 건당 진료비가 소아청소년과, 가정의학과에 이어 뒤에서 3번째로 낮은 과입니다. 감기 같은 단순 질환의 진료가 많아서 일 겁니다. 앞으로 의사 수는 더욱 많아질 것이며, 출생아수는 1970년 대에 100만명에서 2020년에는 30만명 미만으로 예상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하게 줄고 있습니다. 2019년 출생률이 0.92명으로 OECD 국가 중에 유일하게 출산률이 0명 대인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감기같은 단순 질환은 진입 장벽이 낮다 보니 내과, 소아과, 가정의학과 등에서도 진료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의사수가 많아지면 환자의 이비인후과 내원 집중도가 떨어질 것이고 상기도 감염은 치료법의 차별성을 가지기도 힘듭니다. 출생률이 낮아지니 소아 환자 수가 더욱더 줄 것은 자명합니다. 앞으로 여러 상황이 암담한 것이 이비인후과 개원가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비인후과 의사는 어지럼에 있어서는 모든 의사 중에서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또한 어지럼은 일반 감기와는 달라서 진입장벽이 높으며 전정기능 검사는 이비인후과, 신경과 전문의만 시행하고 청구할 수 있습니다. 모든 개원가가 점점 힘들어 질 것이나 이비인후과 의사는 조금 더 전문적인 진료 분야를 가지고 이런 어려운 환경을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힘든 코로나 시기에 핑 이비인후과도 매출이 급감을 하였으나 감기 같은 단순 질환 위주의 이비인후과 병원 보다는 매출의 하락폭이 그나마 적은 것 같습니다.
얼마전 재발하는 이석증으로 저에게 여러 차례 내원하셨던 아주머니께서 ‘이러한 병원이 있어줘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꾸 재발하여 제가 더 송구스러운데도 진심 어린 환자의 말씀이 의사로서 정말 보람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환자분은 ‘핑’ 도시고 저는 감동의 눈물이 ‘핑’ 도는 순간이었습니다. 핑 이비인후과는 앞으로 어지럼 환자분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병원이 되고, 입원실과 MRI를 갖추고 좀 더 많은 의사들이 진료하는 어지럼, 두통 전문 병원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핑 이비인후과의 미래 목표를 향해 저는 오늘도 어지럼 환자분께 힘차게 문진을 합니다. “어지러울 때 핑~ 하고 도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