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산업은 정책적인 용어로 고령친화산업이라고 불린다. 모두들 급속한 인구고령화로 인해 실버산업도 급속히 성장할 것이라는 장미빛 청사진을 품고 실버산업분야에 신규진출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장기요양시설 중 80%가 민간시설이지만, 2010~2019년 폐업률이 절반을 넘고 있다. 왜 이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실버산업의 소비자들은 새로운 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20년부터 65세에 진입하는 베이비부머세대(1955~1963년생)는 자신을 고령층, 노인층으로 불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팔세대(OPAL: Old People with Active Lives), 욜드(YOLD, Young Old), 또는 청로(靑老, 젊은 노인) 등 다양한 신조어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이유다. 단순히 생명을 오래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품격 있는 노후의 삶도 원하고 있다. 증가하는 고령층의 욕구에 따라 실버산업분야도 혁신의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해외에는 있는 혁신적 실버산업분야의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 실버산업의 새로운 방향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1992년 미국 뉴욕주 체이스 메모리얼 요양원(Chase Memorial Nursing Home) 담당의사였던 ‘빌 토마스(Bill Thomas)’는 고령층들의 외로움과 무력감, 권태를 제거하기 위한 기존 요양원과는 다른 새로운 요양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빌은 단순히 깨끗하고 안전한 건물에 안전하게 거주하는 것을 요구하는 기존 요양원모델은 장수의 기쁨을 단지 무료한 생명연장으로만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병원과 같은 요양원이 아닌 노후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요양원을 구상하였다. 우선 대규모 시설형태에서 자신의 집에서 기거하는 것처럼 소규모 주거형태로 전환하였다. 요양원에 강아지, 고양이, 새 등 반려동물을 들여놓았고, 다양한 연령층과도 쉽게 만나 활동할 수 있도록 어린이집, 놀이공간 등을 요양원내 설치운영하기 시작했다. 100마리의 잉꼬새를 요양원에 들여놓았고, 2마리 강아지, 4마리 고양이, 한 무리의 토끼, 알을 낳는 암탉들과 정원, 탁아소가 있는 요양원을 만들었다. 이와 같은 요양원 리모델링 사업은 ‘에덴 얼터너티브(Eden Alternative: 에덴동산의 대안)’이라는 운동으로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2019년 현재 에덴 얼터너티브는 미국을 포함, 영국, 호주, 독일, 스웨덴 등 세계 19개국으로 확대되어 활기차고 품격있는 노후 삶이 가능한 가정 같은 요양원 운영 모델 자문 및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림 1> 미국 체이스메모리얼요양원
주: 체이스메모리얼 요양원 거주 고령층은 새와 강아지 등과 함께 가정과 같은 분위기에서 생활하고 있다.
출처: 체이스메모리얼요양원 홈페이지(https://www.goodshepherdcommunities.org/communities/chase-memorial-nursing-home-rehab/)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일본은 치매고령층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요양원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타다스케 카토라는 청년은 2001년 25세에 요양원에 갇혀 살아가는 고령층의 삶에 충격을 받아 기존 요양원을 퇴사하고, 새로운 요양원 아오이 케어(Aoicare)를 설립했다. 아오이케어는 치매고령층을 사회와 분리시키고 고립시키는 대신 지역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개방공간을 만들었다. 아이오케어는 이 공간을 활용해 치매고령층이 지역사회 거주민들과 소통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활용해 지역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개방공간은 지역주민들이 학교, 직장으로 이동하면서 요양원 거주 고령층과 접촉할 수 있도록 길가에 위치해 있다. 치매고령자가 지역사회를 위해 자신이 직접 빵을 만들어 판매하거나 아이들과 놀이를 할 수 있어 가능한 한 오래 자신의 잠재력을 활용한 지역사회참여활동이 가능하다. 아오이케어는 기존 요양원이 지역사회와 고립됐던 단점을 극복하고, 지역사회와 물리적 접촉을 하고 함께 생활할 수 있어 ‘제2의 가정’으로 변화하는 데 성공한 사례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림 2> 일본의 치매요양원, 아오이케어
주: 개방공간에서 아오이케어 고령층이 지역내 아이를 돌보고 어린이들과 함께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출처: 아오이케어 페이스북 홈페이지(https://www.facebook.com/aoicare)
고령화사회의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대간 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는 것이 필수적이다. 세대간 분리가 아닌 세대간 통합이 실버산업 중 주거분야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의 고토엔은 7세미만 유아와 65세 이상 고령층이 함께 만날 수 있는 공간에서 세대간 차이를 이해하고 상호도움을 제공한다. 고토엔은 1962년 설립된 재가요양보호센터와 1976년 설립된 유치원이 1987년 통합되면서 자연스럽게 아동과 고령층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으로 변화하였다. 매일 등교하는 아이들과 고령층이 함께 아침 인사 및 운동을 함께 한 후 각자 자신의 일과를 시작하고, 점심에는 고령자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선생님과 함께 아이들을 돌봐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고령층은 아이들을 돌보면서 자존감과 건강상태가 향상되고 아이들은 조부모나 친척이 멀리 살거나 없는 상황에서 고령층을 이해하고 고령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없앨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고토엔은 세대간 공감을 통해 세대간 가치와 중요성을 인지하여 저출산·고령사회가 직면한 사회적 돌봄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림 3> 연령친화적 주거모델, 고토엔
주: 개방공간에서 아오이케어 고령층이 지역내 아이를 돌보고 어린이들과 함께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출처: AARP(2018) AARP International: The Journal
벨기에는 2017년에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이미 19%(World Bank Database)에 이른 국가로 우리나라보다 고령화율이 높은 국가이다. 최근 이곳에서도 세대통합형 주거공유사업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이 사업을 이끄는 단체는 ‘원트왓투에이지스(1Toit2Ages)’이다. 트왓(Toit)은 프랑스어로 지붕이라는 뜻으로 ‘한지붕 2세대’를 의미한다. ‘원트왓투에이지스(1Toit2Ages)’은 2009년 7월에 만들어졌고, 주택을 가지고 있는 고령층과 방을 찾는 학생들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시니어를 대상으로 개인적인 돌봄을 제공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거주관리업무 및 쇼핑, 식사, IT 관련 도움제공을 통해 최대 300유로의 거주비지원을 받는다. 학생들은 거주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고령층들은 젊은 층과 대화하고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며, 생활에서 다양한 도움을 받을 수가 있다. 모든 세대가 윈윈할 수 있는 모델이다. 원트왓투에이지스는 2009년에 초기에는 브뤼셀(Brussels)에서만 사업을 운영하였지만, 고령층과 학생들의 요청으로 2012년부터는 사업을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였다. 세대통합 공유주거사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청년과 시니어는 상호 존중과 상호 교류를 전제로 하고 있어 고령사회에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림 4> 벨기에의 세대통합혁 주거공유사업, 원트왓투에이지스(1Toit2Ages)
주: 개방공간에서 아오이케어 고령층이 지역내 아이를 돌보고 어린이들과 함께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출처:원트왓투에이지스(1Toit2Ages) 홈페이지 (https://www.1toit2ages.be/?lang=en)
앞에서 본 사례처럼 실버산업은 단순히 증가하는 고령인구에 의해 주목받는 사업분야가 아니다. 고령층의 특징을 파악하고, 이들의 잠재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 구성원들의 노력이 함께 존재해야만 한다. 모든 세대가 ‘나도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업을 현실에서 구체화하는 것이 실버산업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고령화를 먼저 경험한 나라들은 고령층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연령친화적 사회(Age-Friendly society)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혁신적 실버산업을 구상하는 우리나라에게도 이러한 도전이 필요하며, 이 도전은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