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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과 함께 하는 “랜선 음악회, 방구석 클래식” 부산심포니오케스트라 부지휘자 다니엘 S 김

고전(classics): 예전에 쓰인 작품으로, 시대를 뛰어넘어 변함없이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닌 것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

올해는 클래식 음악의 대 작곡가 Ludwig van Beethoven(1770년 12월 17일-1827년 3월 26일)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0주년이 되는 해이다. 베토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궁정합창단에서 합창단원을 하였고 이들의 음악적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베토벤은 유년시절엔 전도유망한 피아니스트로 유명세를 타게 된다. 17살의 베토벤은 모차르트에게 연주를 선보일 기회를 얻었고 모차르트는 “이 젊은이는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피아노 연주와 창작활동으로 승승장구하던 베토벤에게 갑자기 엄청난 불행이 시작되었다.

서른 살 즈음인 1800년경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귓병 증세가 시작됐고, 월광 소나타가 첫 선을 보인 1802년에는 불과 2년 만에 난청이 심각하게 악화되어 회복이 어렵게 되었다. 베토벤은 피아니스트로서 절망했고 휴가 차 떠난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결심한다. 그는 유서에서 “과거에 내가 아주 완벽한 상태로, 지금까지 극소수 음악가들만 알았던 완벽한 상태였던 감각의 약화를 어떻게 고백할 수 있단 말인가.”, “어느 정도 회복되리라는 지금껏 지닌 희망을 이제 나는 완전히 포기하려 한다.”, “가을 잎이 떨어져서 시들 듯이 내 희망도 메말라 버렸다.”고 자신의 처지를 토로했다. 일반 사람들도 귀가 먹으면 의사소통이 힘들어 많은 불편을 겪게 되지만 음악가에게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건 그 자체로 인생의 목적을 상실한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것이다. 소리의 아름다운 어울림과 구조를 귀로 듣고 확인할 수 없이 오로지 상상과 계산된 음표로 작곡을 해야 하고 자신의 작품을 연주자들이 맞게 연주하고 있는지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것, 이런 엄청난 시련은 보통의 사람들에겐 남은 음악가의 삶을 포기하고 스스로 좌절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베토벤의 유명한 또다른 일화가 있다. 귓병과 실연으로 힘들어하며 현실의 무게를 견딜 수 없어 수도원을 찾아온 베토벤에게 수도사는 나무상자를 내밀고 “이 상자 안에 구슬을 하나 집어 나에게 보여주게.” 라고 말했다. 베토벤은 검은 구슬을 뽑았고, 수도사는 한 번 더 뽑아보라고 했다. 하지만 또 검은색 구슬이 나왔다. 이에 수도사는 “이 상자 안엔 10개의 구슬이 있는데 그 중 검은 구슬 8개는 불행과 고통을, 흰 구슬 2개는 희망과 행운을 의미한다네. 어떤 이들은 흰색 구슬을 먼저 뽑고 어떤 이들은 자네처럼 검은 구슬을 먼저 뽑을 것이야. 중요한 건 아직 이 상자 안에는 8개의 구슬이 남아있고, 그 중 2개는 분명 흰 구슬이 있다는 것이네. 검은 구슬을 연속해서 뽑는다고 좌절하지 말게, 계속해서 도전한다면 반드시 흰 구슬을 뽑을 수 있을테니 말이야.” 라고 말했다. 자신 앞에 닥친 불행은 분명 비관적이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베토벤은 이러한 참담한 비극을 자신의 운명으로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 비극의 멱살을 움켜쥐며 당당히 전진하며 극복해 나갔고, 그 이후 역사상 최고의 음악작품으로 손꼽히는 전 인류애를 담은 교향곡 9번인 합창 교향곡 등 수많은 명곡들을 창작해 냈다는 사실은 한 인간으로서 무한한 경외심을 갖게 한다.

베토벤이 음악가로 활동했던 18세기는 왕족과 귀족 중심의 계급 사회였고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은 절대적으로 이들의 후원을 필요로 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많은 작품들은 개인의 예술적 목적보다 귀족의 후원 아래서 그들이 원하는 궁정음악이나 살롱음악으로 작곡되었지만, 베토벤은 같은 상황에서도 크게 구속받지 않고 작곡자 스스로 예술가의 길을 찾아가려 했었다. 베토벤은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주체적으로 예술적 성취를 목표로 하는 진정한 계몽을 꿈꿔 나갔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업적을 남긴 위대한 인물들도 그 시대상을 뛰어넘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베토벤은 후원자의 수준과 기분을 맞춘 음악을 작곡하기보다 계급사회의 문제점을 깨닫고 개인의 권리를 지켜나가려는 계몽운동을 음악을 통해서 펼쳐 보였다. 베토벤은 주어진 상황과 별개로 개인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가게 된 것이다.

이런 일화도 있다. 당시 대문호 괴테와 베토벤은 산책을 하던 중 귀족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괴테는 귀족에게 먼저 인사를 하였지만 베토벤은 인사를 하지 않았다. 이에 괴테가 왜 귀족에게 먼저 인사를 하지 않느냐고 베토벤에게 물었다. 그러자 베토벤은 “저들은 한 세대만 지나도 잊혀질 것입니다. 하지만 선생과 나는 영원히 회자될 사람들인데 어째서 그들에게 먼저 고개를 숙여야 합니까?” 라고 말했다.

베토벤... 그는 자신의 운명 앞에 언제나 당당했으며, 끊이지 않는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인 고통 속에서 삶에 대한 사랑을 그의 음악 안에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그의 예술은 모든 삶과 모든 인류의 경험을 감싸 안았고, 그의 마지막 교향곡 최종 악장에 실러의 <환희의 송가 (An die Freude)>에 음악을 붙이며 (베토벤은 최초로 교향곡에 성악을 접목하였다) 완성되었다.

1827년 3월 26일 빈에서 거행된 베토벤의 장례식에는 각지에서 몰려든 2만여 명의 추모객이 운집하였다. 베토벤을 추모하는 뜻에서 빈의 상점과 레스토랑과 카페들은 모두 문을 닫았으며, 베토벤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었던 빈 음악원조차도 휴교에 들어갔다. 인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경찰이 나섰으며, 장례식이 거행된 성당을 떠난 운구행렬은 200대의 마차가 베토벤의 영구 마차를 호위하는 장관을 연출하였다. 귀족이 아닌 평민 출신의 음악가에게 이런 국장이 치러진 것은 베토벤이 처음이었으며, 이러한 장례식은 그 이후에도 거행되지 않았다.

2020년 현재에도 전 세계 음악회 프로그램에 어느 작곡가보다도 베토벤의 작품이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이유는 자신에게 닥친 이러한 불행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생의 의미를 찾아 가치 있게 살아내어 소중한 귀감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베토벤은 더 나아가 귓병의 고통 속에서도 고도의 집중력으로 상상 속의 음표들을 오선지에 옮겨 아름다운 어울림을 음악으로 완성시켰으며, 이러한 그의 음악은 당대와 후손에게 무한한 생명력이 살아 숨 쉬는 수많은 명곡으로 인정받고 있다. 베토벤은 단 한 번뿐인 인생에 대한 사랑과 용기, 그리고 감동을 선사하고 이에 대해 사색할 수 있도록 하는 위대한 예술가이자 위대한 인간으로 인류사에 큰 공헌을 하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한창인 요즈음, 베토벤의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기획되었던 연주회들도 일부 연기되거나 취소된다는 소식들이 들려와 좋은 음악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들이 줄어들어 매우 안타깝다. 베토벤이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극복해낸 것을 생각하며 지금의 어려운 시기를 다 같이 극복해내는 것에 도움이 될 “랜선 음악회, 방구석 클래식”에 여러분을 초청한다.

●교향곡 6번 《전원》 4-5악장
https://youtu.be/iQGm0H9l9I4
매서운 폭풍이 몰아치는 4악장, 그리고 폭풍이 지난 뒤 즐겁고 감사함을 표현한 5악장. 베토벤은 휴가 때면 늘 시골의 한적한 마을과 자연 속을 산책하며 음악적 영감을 얻고 지친 심신을 치유했다. 자연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며 새로운 봄에 잘 어울리는 곡이다.
●피아노협주곡 3번 2악장
https://youtu.be/F79iU5WAU-8
사랑에 대한 열병으로 가슴 아픈 베토벤의 연인에 대한 애절함이 절절히 느껴지는 아름다운 곡이다.
●교향곡 3번 작품 55 영웅 《Eroica》 4악장
https://youtu.be/cziRynzmWaA
꿈꿔왔던 이상향에 대한 최고의 음악적 고찰이자 베토벤만의 개성과 독창성이 완벽히 구현된 서양음악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불의와 고난에 당당히 맞서는 한 인간, 그리고 죽음, 이후에 영원히 빛을 발하며 기억되는 영웅을 묘사하였다.
●현악4중주 작품 130 《카바티나》 5악장
https://youtu.be/XIn3ictF9SA
″내가 작곡한 음악에 이토록 감동한 것은 처음이며 이 곡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새삼 솟구친다.″ 마지막으로 지난 인생을 돌아보며 드는 회한과 아쉬움, 반성과 후회, 그리고 체념과 위로가 느껴지는, 베토벤 스스로 최고로 여겼으며 가장 좋아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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