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OICA에서 캄보디아에 이비인후과 병원을 짓는 사업을 한다고 처음 듣게 된 것은, 2018년 10월에 같이 근무하고 있는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의 국제진료센터 유병욱 교수님을 통해서였다. KOICA라는 단어는 여러 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사실 이때만 해도 KOICA가 어떤 일은 하는지 정확히 몰랐다. KOICA는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의 약자로 개발 도상국가의 경제, 사회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각종 국제 협력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2020년에는 9400억의 어마어마한 예산을 집행할 예정인 외교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저자는 캄보디아에 대해서 킬링필드, 앙코르와트 이외에는 전혀 알지 못하였고,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에 international fellow로 연수 왔었던 이비인후과 의사들을 몇 명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순천향대학교 중앙의료원 국제사업팀이 KOICA와 함께 이 사업을 수행하게 되었고, 나는 병원 건립의 주요한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4년간 진행되는 사업으로 병원 설계 및 건설, 기자재 구입, 병원 운영에 대한 컨설팅, 교육과정 개발, 현지 교육, 연수 교육 등이 계획되어 있다. 8백만 달러가 들어가는 방대한 사업이라고 하였다. 관련한 경험이 전무한 나에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2019년 1월 초 국제사업팀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캄보디아로 출장을 갈 것이고, 병원 설계도면을 보고 외래, 입원실, 수술실에 대한 배치 및 동선에 대한 의견을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러 자료를 보내왔다. 캄보디아에는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45명이 있는데, 앙두엉병원에 15명의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근무하고 있다. 앙두엉병원은 종합병원은 아니고 안과, 이비인후과만 있는 전문병원이자 국립병원이다. 물론 캄보디아 내 유일한 이비인후과 병원이어서 이비인후과 질환 진단, 치료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연 5천 건의 이비인후과 수술을 하고 있는데, 1910년대에 지어진 80병상의 건물이라 안전상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2019년 1월 말 캄보디아로 출국을 하였다. 다음날 KOICA 사무소에 첫 미팅이 있었다 (그림 1). KOICA 현지 부서장과 직원들, 건축설계사무소 직원들을 만났고, 단순히 사업 착수 및 일정에 대한 보고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사업이 잘 진행되는지 감독을 해야 하는 공무원, 이익을 추구하는 건축회사, 그리고 사업을 이끌어야 하는 국제사업팀의 보이지 않는 힘듦이 느껴졌다. 캄보디아에서 2011년 모자보건센터 건립, 2014년 국립소아병원 건립 경험이 있는 국제사업팀의 캄보디아에 대한 배경지식, 사업능력 그리고 다양한 경험에 대한 발표와 토론 이후에는 사업 수행에 대한 모두의 걱정은 신뢰로 바뀌었던 것 같다. 나도 몰랐던 많은 일을 국제사업팀이 하고 있었고,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림 1. 앙두엉병원 설계도면 회의
그림 2. 이비인후과에서 진료 대기 중인 환자들
앙두엉병원 이비인후과의 첫 모습은 다음과 같았다. 먼지 날리는 주차장 옆 가건지붕 아래에 환자들이 앉아 있거나 서있으며, 복도에 길게 늘어져 있는 사람들, 100명은 족히 넘을 것 같았다 (그림 2). 놀라운 건 모두가 이비인후과 진료를 보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이었다. 이들을 뚫고 지나서 큰 진료실을 만날 수 있었다. 5명의 이비인후과 의사가 동시에 진료를 보고 있었는데, 헤드미러를 쓰고 이경을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내시경, 현미경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구강암환자가 있었는데 항암방사선치료를 할 수 있는 병원으로 전원을 하는 모습도 보았다. 수술하고 보내면 좋을 것 같은데 생각을 하며 수술실로 이동하였다. 수술실 모습은 충격적이지 못해 눈물이 날 정도로 슬펐다. 100년 된 건물이고 사무실로 쓰였던 공간을 수술실로 개조하였기에, 곰팡이는 벽을 타고 있었고, 환기 시스템이 없는지 선풍기가 신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림 3). 이 곳에서 인공와우 수술이 시행되었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였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마취약으로 아직 할로탄을 사용하였고, 환자들은 회복실이 없어 수술 후 바로 병실로 이동했으며, 병실 부족으로 복도에 많은 환자들이 누워 있었다. 왜 구강암환자를 수술을 안하고 타병원으로 보냈는지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다. 열악한 시설도 문제지만, 환자안전, 감염관리, 행정업무 등의 의료시스템의 부족은 더 심각해 보였다. 전체적으로 전쟁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야전병원 같은 느낌이라면 맞을 것 같다 (그림 4). 과거에 우리나라 국민들도 이처럼 처참한 환경에서 치료를 받았었을 것 같은 생각에, 현재 의료 시설 및 환경에 고마움이 진심 느껴졌다.
그림 3. 앙두엉병원 수술실
그림 4. 앙두엉병원 일반 병실
2019년 여름에 두 번째 캄보디아 출장이 있었다. 의사, 간호사,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이비인후과 학술대회 및 간호사 감염관리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그림 5). 또한 의료봉사로 오신 박기남 교수님, 최지호 교수님과 함께 갑상선 수술, 악하선 절제술, 부비동 수술의 live surgery를 시행하였다 (그림 6). 부족한 기구에도 합병증 없이 완벽한 수술을 보여주신 두 교수님께 박수를 드리고, 갑상선 수술할 때 한 줄의 실크로 모든 혈관을 결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전공의 선생님께 경의를 표하며 훌륭한 어시스트에 감사를 드린다.
그림 5. 캄보디아 이비인후과 학술대회
그림 6. Live surgery for thyroidectomy
낙후된 의료 시스템 및 시설과 달리 캄보디아 의사들의 수술 술기, 지식은 상당히 높았으며, 후학 양성을 위한 훌륭한 교육기관이 될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첫 해외 의료봉사를 중앙의료원 한캄봉사회 의료봉사팀과 같이 하게 되어 의미가 있었다.
외래, 검사실, 수술실 및 병실 배치에 관한 설계를 다시 하였고, 의료 기구 목록을 정했다. 초기 8백만 달러 정도의 큰 사업비라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었지만, 철거, 건설 및 모든 시설 자금이 포함된 것이라 부족함을 느끼기도 했다. 지금도 의료 관련 감염관리 컨설팅, 간호부 운영 컨설팅, 의료기기 업체 선정 및 컨설팅, 건물 철거 및 신축이 진행되고 있고,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라지면 2020년 캄보디아 출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고맙고, 그 곳이 나를 필요로 해서 더 행복하다. 다시 한 번 이런 능력을 주신 스승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다. 병원일로 바쁜데 도움을 주시고 있는 시설팀장님, 감염관리팀장님, 간호부장님께 감사를 드리며, 잘 진행해주시는 국제사업팀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