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19일 우한발 항공편으로 입국한 중국 여성이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환자로 확진이 되고 따문따문 양성 환자가 국내 여기저기에서 보고 될 때만 해도 대구 경북지역은 코로나 청정지역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17번째 환자가 대구를 다녀갔음에도 접촉자 모두가 음성으로 확인되어 역시 대구는 천재지변, 자연재해에 완벽하게 안전한 곳이구나 생각하며 희희낙낙할 때가 있었다. 코로나 19가 남의 나라, 타 시도의 일로만 생각하고 있던 순간도 일순간 신천지라는 새로운 매개체를 통해 대구경북 전체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2월 20일 말로만 듣던 코로나바이러스 양성 환자가 발견되었다. 호흡기 내과 간호사가 자진해서 응급실을 방문하여 검사해 달라 졸라대더니 마침내 양성 판정을 받고 응급실과 근무 병동은 폐쇄되었고, 그날 오후 이틀 전 엄마에게 간을 공여해준 딸이 코로나 검사를 요청한 결과 양성으로 판정되어 병동, 중환자실, 수술실이 폐쇄되었다. 이들 둘 모두가 신천지 신도라는 사실에 놀랐고 메스컴에 좋은 먹이감이 되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이 후 불과 몇일이 더 경과하는 사이 대구지역 하루 확진자 수가 세 자리 수가 되었고 2월 29일 741명을 정점으로 조금씩 감소하고 있지만 사태 발생 일주일 만에 대구지역 누적 환자 2500여명을 넘기게 되었다.
어느 순간에 의료원은 전시 상황으로 변해 있었고 바이러스 양성 환자를 위해 3개 병동, 1개의 중환자실을 만들어 양성 환자들을 진료하게 되었다. 수치적으로 보면 별 문제가 아니겠지만 사실 불가능한 전투였음이 분명하다. 초기 간호사와 의사인력 자가 격리자만 해도 100여명, 양성환자를 위한 관리 병동과 선별진료소 운영을 위한 감염내과 호흡기 내과 교수님은 태부족한 실정이었다. 이런 난세에 영웅들이 나타나는 법. 관리병동을 위해 40여분의 교수님들이 1일 3교대 근무에, 선별 진료소에 20여분의 교수님들이 자진해서 참여해 주셨고, 감염내과와 호흡기 내과 교수님은 퇴근을 포기했으며, 평소에는 불평불만 많은 간호사들은 하루 8시간씩 Level D, PAPR을 입고 병동과 중환자실에서 묵묵히 근무해주고, 행정직원들은 24시간 대기하며 양성 환자 입원과 검사를 위한 동선 구축, 방역, 시설 변경과 확장 등등 모든 구성원들이 어벤저스급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과연 모든 것들이 순조롭게 진행 해결되고 있나? 그건 결코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사태 초기 ‘환자 진료를 위해 무엇이든지 도와주고 협조해 줄 테니 뒷일 걱정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달라’는 말에 순진한 의료인들은 힘들어하는 환자들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는데…., N95 마스크, Level D, 덧신, facial shield, PAPR 어느 하나 여유없이 위태로운 진료 현장인데, ”의료진들이 좀 더 넉넉하게 재고를 쌓아두고 싶은 심정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라는 얘기, 사태 초기 필요한 장비나 시설은 얼마든지 지원해 준다더니 수십 수백억의 구호금에서 의료 지원은 감감 무소식이고, 마치 이 기회에 의료기관에서 한몫 챙기기라도 할 듯이 불안해하는 정치인들의 어처구니 없는 상상력에 망연자실하지만 환자들을 포기할 수 없어 오늘도 마음 조려가며 여기저기서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들의 모습을 보면 고맙고 안쓰럽기만 하다.
코로나 사태가 벌어진 지 한달이 넘어가고 있다. 과 회식을 못한지 벌써 2달이 되어간다. 혈중 알코올 농도를 유지하기 위해 혼술하시는 분들이 점점 늘어가고, 회의나 관리 병동 갈 때마다 전국에서 보내져오는 건강 식품과 자양강장제를 너무 많이 먹어 간기능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두렵기까지 하다는 농담과 함께, 전국 각지에서 보내오는 격려 편지와 물품에 모두들 감사하며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고사리 손으로 적어 보낸 삐뚤삐뚤한 편지, 동네 유치원에서 보내온 선물. 중국에서 보내온 구호물품인 대형 트럭 하나 가득 실려온 N95, KF94 급 마스크와 보호구들을 보면서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어쨌거나 모두 모두 감사한 일이다.
대구에 불어닥친 혼란이 시작된지 40일이 되어간다. 처음 시작할 때는 모든 일들이 당황스럽고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하였지만 이제는 모든 일들이 일상이 되었고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가신 것 같다. 아직은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지만 반드시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 싸움일 것이다. 다만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않는 정부, 무의미한 회의, 현실감 없는 대화, 수없이 존재하는 control tower 같은 불필요한 요인들이 개선된다면 더욱 빠른 정상화가 이루어 질것이다. 분명 대한민국은 전세계적으로 모범적인 코로나 극복 국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국가 지도자들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일선에서 환자들의 발생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온몸을 던져 진단하고, 치료하려고 노력하는 의료인과 그들을 돕는 많은 직원, 의료 현장의 어려움을 공감하는 국민들이 함께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지금도 Level D를 입고 현장에서 근무하는 의료진, 그들을 돕기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영웅이자 승리자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