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한지 한달이 다 되어가지만 제가 이비인후과 전공의라는 것이 아직은 꿈 같습니다. 꿈에 그리던 이비인후과에 입국한 것이 좋아서 꿈 같기도 하지만, 아직은 제가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잘 갈피가 잡히지 않아 꿈을 꾸는 것처럼 붕붕 뜬 기분이기도 합니다. 한달 전까지만 해도 내가 이비인후과에 입국하고 일은 잘 할 수 있을지, 교수님, 전공의 선생님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지만 막상 입국하고 나니 걱정을 할 여유 없이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며 지내고 있습니다. 입국한 처음 일주일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잠을 잘 때 마저 긴장이 되어 2시간에 한번은 일어나기 일쑤였고, 첫 일주일이 지난 후로는 긴장이 조금 풀리면서 커피를 마시는 여유는 생겼지만 아직까지 제가 이 곳에서 한사람의 역할을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에 아직은 아침마다 떨며 출근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런 저의 마음을 알아주시는지 교수님과 윗년차 전공의 선생님들께서 미숙한 저를 응원해주시어 저는 매일 잊지 못할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교수님께서 tracheotomy 중 기회를 주셔 기관에 incision을 넣었는데 메스 넘어 느껴진 생생한 감촉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오늘은 frenotomy 수술에 참여하여 메스도 잡고 기구로 지혈도 했는데 다들 간단한 수술이라고 하지만 어제 밤 저는 기대감에 머리 속으로 수술방에서 일어날 과정을 수도 없이 상상하며 걱정 반 설렘 반의 마음으로 잠에 들었습니다. 앞으로 처음 해보는 일이 수 백가지, 수 천가지도 넘게 남았다고 생각하면 4년간의 수련 기간이 길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한편, 외래에서 환자들을 만나거나 입원 환자를 만나는 일상도 즐겁습니다. 입원 환자를 파악하여 매일 환자를 만나고 상태를 파악하는 일들이 작년과는 달리 제가 담당하는 환자가 있다는 점에서 어색하고 책임감이 무겁지만 환자에게 저를 담당 전공의라고 소개하고 앞으로의 치료 계획에 대해 의논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쁩니다. 매일 아침 만나는 입원 환자가 저를 볼 때마다 점점 표정이 밝아질 때, 일찍 기상하는 것이 힘들지만 보람을 느낍니다. 외래에서 익숙하지 않은 술기들이 연습을 통해 점점 손에 익는다는 느낌이 들 때 성취감을 느낍니다. 불과 한달 전 laryngoscope을 잡는 연습을 동기와 할 때는 서로의 코를 찔러가며 매번 눈물 콧물 범벅으로 끝났지만 지금은 제법 악! 소리 한번 듣지 않고 제법 능숙하게 원하는 구조물을 볼 수 있어 또 한발짝 성장한 느낌에 남몰래 뿌듯함을 느낍니다. 이런 작지만 소중한 경험들이 쌓여 환자를 더 능숙하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매일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들이 나를 이비인후과 의사로 만들 것이라는 생각에 뿌듯하기만 합니다.
이런 설렘 외에도 제가 한달 간 많이 느낀 감정은 바로 소속감입니다. 입국 전 인턴 시절에는 내가 속한 집단이 없어서 일하는 병원에 섞이지 못한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은 이 병원의 일부가 된 느낌입니다. 매일 입는 가운 명찰 이름 옆에 ’이비인후과‘라고 새겨져 있는 걸 볼 때마다 내가 진짜 의국원의 일부가 된 기분입니다. 의국원이 아니였다면 남이었을 저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아낌없이 알려주는 의국원들에게 매번 감사함을 느낍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다같이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바로 옆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정하게 알려주는 전공의 선생님들과, 제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며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주시는 교수님들 덕분에 앞으로 수련과정 동안 생길 일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잘 해낼 용기가 생겼습니다. 귀, 코, 그리고 목이 이어져 있듯 저도 이비인후과 의국과 하나로 이어진 듯 새로운 가족이 생겨 든든합니다.
날씨가 따듯해졌는데도 여전히 아침마다 떨면서 출근하는건 추워서가 아니라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감과 의국원들과 함께 할 하루가 기대되어 심장이 떨리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감정들을 잊지 않고 매일을 소중히 사는 전공의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