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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NTian October 2022 W-ENTian October 2022

하비파머 인하대병원 최정석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면 문득 한가한 전원생활이 그리워지곤 합니다. 그래서 은퇴한 많은 분이 한가롭게 여생을 보내기 위해 귀농을 선택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전업이 아닌 취미의 형태로 소규모 농사를 즐기는 사람을 하비 파머 (Hobby Farmer)라고 하는데, 저 역시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하비파머가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초보 하비파머로서 느꼈던 것들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 곳을 찾던 부모님은 수십 년간 살고 계신 서울집을 떠나 김포의 전원주택으로 주거지를 옮기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부모님은 몇 개월이 지나서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다시 서울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만, 시간은 벌써 3년을 다 채워갑니다. 전원주택지에는 황토로 만든 집과 주변에 노는 밭이 함께 있었는데, 그곳으로 부모님을 뵈러 가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텃밭을 가꾸는 농사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림1. 텃밭의 봄꽃 심기 및 가꾸기

처음에는 삼대가 모여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좋았고, 아이들도 자연과 가까이 지내면서 다양한 체험을 하는 것을 보니 내심 기뻤습니다. 물론 이면에는 극복해야 할 일들이 많았는데, 특히 여름의 땡볕과 많은 비는 초보 하비파머인 저를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땡볕은 물을 머금지 못한 작물을 타들어 가게 하였고, 많은 비는 작물을 썩게 했습니다. 저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비가 많이 내린 후에 빠르게 자라는 풀이었는데, 풀이 자라면서 잘 자라던 작물과 꽃 주변을 빠르게 잠식하기 때문에 가급적 빨리 풀을 뽑아야 했습니다. 또한 풀과 함께 늘어난 엄청난 벌레는 풀을 뽑는 일조차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잘 관리된 잔디와 정원이 있는 공원에만 익숙했던 우리 가족에게 이러한 환경은 처음에는 정글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풀을 뽑고 작물을 가꾸고, 꽃과 나무를 심으면서 천천히 농사일을 한 해, 두 해 해 나가다 보면 힘들어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조금씩 보이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뿌리고 심었던 꽃씨와 식물, 나무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황토집 주변은 일년내내 다양한 색채의 꽃과 나무로 가득했고, 가을이 되면서 익은 곡식과 작물은 초보하비파머에게 수확의 뿌듯함을 선사하였습니다. 최근에는 코로나 사태가 완화되면서 사람들을 초대하여 같이 농사일도 하고 파티도 하며 보내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겨울에는 꽃과 작물이 없어도 텃밭에 머무른 하얀 눈을 보면서 제법 근사하다고 느끼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그 눈 속 아래에는 봄에 곧 자라날 튤립의 새싹이 다소곳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림2. 아들 영준과 함께하는 봄철 나무심기


그림3. 아들 영준, 민호와 함께하는 여름날의 과일 수확

최근에는 기상이변으로 인해 유독 시금치와 상추, 배추와 같은 채소의 가격이 올랐습니다. 이런 작물을 직접 재배해서 먹는 저에게 채소 값의 폭등은 그리 마음에 와닿지는 않습니다만 작물을 얻는 것이 단순하게 취미가 아닌 노동에 대한 대가라고 한다면 작물을 기르는 어려움을 몸소 채험한 저에게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키운 채소의 가격이 오르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미국의 대도시의 빌딩에서도 자급자족을 위해 채소를 가꾸는 실험을 한다고 합니다. 이는 자기가 직접 키운 채소를 식탁에 올리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라고 하는데, 미국인들은 이를 통해 농사의 소중함과 생태의 가치를 알고, 건강한 먹거리를 챙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림4. 가을날의 고구마 수확

하비파머로서 정말 놀랄만한 일은 아무리 실력이 모자란 저같은 초보가 키운 작물도 수확하면 매우 맛이 뛰어나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가 재미있는데, 작물은 자신을 잘 돌봐주지 못하는 파머를 만나게 되면 스스로 큰다고 합니다. 이는 때를 맞추어 거름도 주지 못하고 벌레도 못 없애고, 물도 잘 못 주게 되니 작물 본연의 생명력이 스스로 살아나 잘 자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연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진리(무위이화, 無爲而化)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하비파머의 삶을 경험해 보시길 권유드립니다.


그림5.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만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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