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성이 거문고자리의 알파별인 직녀성 Vega별이었던 12,000년전! 고대사회에서 춤과 음악은 지배계급인 제사장만의 전유물이었고, 춤과 음악은 인간과 하늘을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였습니다. 제천행사의 춤과 음악을 통해 우주와 연결되고 그 힘으로 질병을 물리친다는 고대의 제천의식은 예술과 의술의 기원이 되었고, 제사장은 댄서이자 곧 의사였습니다.
진료실과 도심의 불빛을 잠시 뒤로하고 한여름 밤하늘을 쳐다보면 호수를 연상시키는 은하수 한가운데에 커다란 백조 한마리가 날아가고 있습니다. 바로 백조자리 (Cygnus) 입니다. 이 백조자리의 알파별인 Deneb별, 그리고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있는 직녀성 Vega별과 견우성 Altair별 3개가 거대한 삼각형 (Summer Triangle)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러시아의 위대한 작곡가 챠이코프스키가 발레음악을 통해 꿈꿨던 “백조의 호수” 입니다. 챠이코프스키는 우주의 중심인 북극성이 백조자리 Deneb별로 이동한다는 천문학적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고, 또한 러시아가 고대 시베리아문명 시대의 패권을 되찾기를 바랬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고대의 음악과 춤이 정치, 종교와 불가분의 관계였던 것처럼, 챠이코프스키의 발레음악 외에도 스트라빈스키의 발레음악인 “불새 (L’Oiseau de Feu)”, “봄의제전 (Le Sacre du Printemps)”,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의 “금의 시대 (The Golden Age)” 같은 발레음악들을 보면 아름다운 예술작품일 뿐만 아니라 고도의 천문학적, 정치종교적 메시지가 숨어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수가 없습니다. 나찌가 이웃나라를 공습하기 1주일전, 푸르트뱅글러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보내 베토벤의 장중한 음악을 연주하게 한 역사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당시 유럽국가들에게 베를린 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발레가 프랑스대혁명 이후 쇠퇴하자, 러시아 로마노프왕조는 엄청난 유지비용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로부터 발레를 도입하고 전폭적으로 후원하게 되는데,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는 놀랍고 흥미진진한 천문학적 배경이 깔려있습니다. 이 부분은 후에 기회가되면 “재미있는 발레와 천문학” 이야기로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백조자리 (Summer Triangle)
1884년 초여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Alexandra Feodorovna)는 언니 엘리자베트 (Elisabeth)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러시아제국으로 가는 마차에 올라탑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그림같은 겨울궁전 (Hermitage Museum)에서 거행된 언니의 결혼식에서 알렉산드라 공주는 처음만난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와 세기의 사랑에 빠지게됩니다. 20세기의 세계사를 뒤흔들게 되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는 이렇게 두 남녀의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싹이트게 됩니다. 알렉산드라 공주의 외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이 영국왕실을 괴롭힌 유전병인 혈우병, 일명 Royal Disease의 보인자였던 것입니다. 당시 빅토리아 영국왕실에 전해지는 이상한 유전병에 대해 알고있던 러시아 귀족들은 알렉산드라와 니콜라이의 결혼을 극구 반대하였지만, 두사람의 사랑을 꺾지 못하고 결국 세기의 결혼식이 거행되게 됩니다.
알렉산드라 황후와 니콜라이2세 황제
그런데 외가 뷔르템베르크 가문의 DNA를 물려받은 멋진 외모의 니콜라이 2세 옆에는 또하나의 여성이 있었으니, 바로 황실발레리나 마틸다 (Mathilde) 였습니다. 로마노프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와 가족들은 10월혁명으로 1918년에 몰살되는데, 마틸다는 다른 여러 대공들과의 염문끝에 안드레이 대공과 결혼하여 로마노프 왕조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고, 1971년 99세로 천수를 다할때까지 파리에서 살았으니 그야말로 천운의 여인이 아닐수 없습니다.
발레리나 마틸다 (Mathilde)와 Mariinsky 극장 (영화 마틸다의 한장면)
니콜라이 2세 황제와 알렉산드라 황후는 4명의 공주 (올가, 타티아나, 마리아, 아나스타샤)와 막내 알렉세이 (Alexei) 황태자를 낳게됩니다. 이렇게 니콜라이 2세 황제가 발레리나에 빠져있는 사이에 혈우병을 가진 황태자 알렉세이가 태어나면서 20세기 세계사의 불행의 씨앗은 점점 자라게 됩니다. 성장기에 혈우병을 앓는 알렉세이를 치료하기 위하여 여러 의사들이 불려왔지만 혈액응고기전도 밝혀지지 않았던 당시의 의학은 당연히 아무런 도움이 될수 없었습니다. 이때 설상가상으로 시베리아 출신 수도승 라스푸틴 (Rasputin)이 알렉산드라 황후앞에 등장하게 됩니다. 요승 라스푸틴은 어떤 의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결하게 되는데, 라스푸틴이 알렉세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 한두시간이 지나면 알렉세이가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나오게되고, 심지어 라스푸틴은 죽을뻔했던 알렉세이를 살려내기도 합니다. 이렇게하여 알렉산드라 황후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은 요승 라스푸틴의 행보는 현재 우리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내정간섭, 외교간섭, 부정부패, 수탈과 과도한 세금으로 많은 러시아 국민들이 헐벗고 굶주리게 되고, 러시아 국민들의 고통은 조금씩 또다른 씨앗을 키우게 됩니다. 바로 혁명의 씨앗입니다.
알렉세이 황태자
한편 알렉산드라 황후가 요승 라스푸틴의 손아귀에서 꼼짝못하고있는 사이에, 니콜라이 2세 황제의 정치활동에도 큰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애첩 발레리나 마틸다에게 빠져있던 니콜라이 2세에 대한 민심은 악화되고 있었고, 러시아가 부동항을 확보하고자 일으킨 러일전쟁은 러시아의 대패로 끝나고맙니다. 패전으로 인한 막대한 국력낭비와 재정고갈로 러시아국민들은 그야말로 도탄에 빠지고되는데, 그러한 시국에 니콜라이 2세 황제는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총동원령을 내리게됩니다. 설상가상으로 피의 일요일 (Bloody Sunday)에 굶주리던 러시아국민 1,000여명이 과잉충성하던 군인들의 총에맞아 사망하면서 서서히 커나가던 혁명의 씨앗은 10월혁명으로 타오르게되고, 이로써 화려하고 위대했던 러시아 로마노프왕조는 막을 내리게됩니다.
북극성은 앞으로 수천년에 걸쳐 챠이코프스키가 꿈꿨던 “백조의 호수” 백조자리 Deneb별로 이동하게 됩니다. 쇼스타코비치의 1930년 발레곡 “The Golden Age”는 천문학적인 “철의시대 (Age of Iron)”가 끝나고 “금의 시대 (Age of Gold)”가 도래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천문학적인 시대의 변화가 예술문화의 변화를 불러오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의학과 질병의 역사도 세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발레와 혈우병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던 100년전 10월혁명의 역사가, 코로나바이러스가 촉발시키는 2020년 4차 산업혁명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머지않은 미래에 마주하게될 익숙치 않은 세상으로의 대변혁 시기에 아름답고 고결한 발레예술이 우리사회를 화합시키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어줄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