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병원에 발령받아 근무를 한지 10년을 채워갈 때가 되니 임상이나 진료 모두에 있어 재충전이 필요할 때를 느끼게 되어 장기연수를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2018년 여름부터 1년을 계획하였지만 6개월 연장하여 2019년 하반기까지 캐나다 토론토에서 아이 둘을 데리고 독박육아와 함께 연수를 다녀온 후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제가 연수지로 결정한 Archie’s CI laboratory는 University of Toronto 소속의 어린이병원인 Hospital for sick children (Sickkids) 이비인후과 소속의 연구소입니다. Sickkids는 북미지역 어린이병원 중 진료 및 연구 모두 선도하는 곳으로, 이비인후과의 Archie’s CI lab (https://lab.research.sickkids.ca/archies-cochlear-implant/)은 1998년 설립되어 인공와우와 관련된 다양한 임상연구를 시행하고 있는데, 연구분야가 각종 청각재활기기의 적용과 관련된 behavioral study와 뇌전도를 이용한 신경과학에 걸쳐있어 저의 기존 연구방향에 적합한 연구소였습니다. 연구소장인 Dr. Karen A. Gordon은 청각학 전공이면서 CORLAS (Collegium Oto-Rhino-Laryngologicum Amicitiae Sacrum) 멤버이며, 청각학 뿐 아니라 소아과학, 신경과학 분야 유수저널에 활발히 논문을 출간하고 있습니다. 연구소의 임상파트를 맡은 Dr. Blake Papsin 과 Dr. Sharon Cushing 또한 소아이과학분야에서 저명한 분들입니다.
그림 1. Dr. Gordon, Dr. Papsin과 함께 연구소 단체사진
1) 연구실 생활
모든 연구가 그렇듯이 초기에는 수월하지 않았는데, 제 연수개시와 함께 기존에 사용하던 auditory ERP를 분석하던 프로그램 코드를 Matlab 기반으로 이전하여 개선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기존 분석프로그램과 비교하여 검증하는 지난한 과정을 수행함으로 동일한 자료로 분석과 재분석을 반복하며 초반 약 6개월의 시간을 소모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전에 뇌파분석을 담당하던 Post-doc이 다른 연구기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약 1년간 뇌파분석을 전적으로 담당하게 되었고, 2019년 후반에야 후임 Post-doc에게 뇌파분석 및 기타 자료분석법을 인계하고 향후 연구소에서 사용할 분석 매뉴얼까지 제작을 해주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연구팀에는 석박사 학생과 박사후 연구원 뿐 아니라 각종 행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피험자 모집과 함께 자료수집도 도와주는 research assistant와 실험장비와 분석프로그램을 관리하는 technical assistant가 함께 있어 연구자는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림 2. 병원 옆 연구소 건물에 배정된 책상
여름에는 토론토대학의 학생들이 여름 학기에 연구실에 자원하여 연구에 참여하는데 (summer student), 형식적인 참여가 아니라 하나씩 주제를 맡아 어느 정도 거의 완성된 형태의 연구결과를 하나씩 만들어내곤 하였습니다. Sickkids 차원에서 summer student를 위해 연구발표를 하는 자리를 마련해주고 자신의 다음 코스를 시작하더라도 자원하여 연구소에 몇 달 더 나와 자기 결과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하는데, 스스로 노력하여 결과를 만들고 그 결과물이 자신의 이력에 도움이 되는 선순환 구조로서 좋은 연구자를 배출하는 토양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매주 랩미팅에 참석하는 인원이 달라지니 자주 자신의 연구 목표와 그동안의 진행을 반복적으로 발표하는 기회로 활용하는 것도 연구원을 훈련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느꼈습니다.
연구소에서는 누가 상을 받거나 학위발표를 하면 축하하는 potluck party를 자주 했는데, 잡채나 부침개같은 한식을 조금씩 만들어가면 나름 인기가 좋았습니다. 매년 크리스마스 때에 연구소 파티를 하는데 파티 후 activity로 그동안 영화를 보거나 하였는데 제가 제안하여 가까운 토론토시청 앞 광장의 스케이트장에서 함께 스케이트를 타게 되었는데 반응이 좋아 2년 동안은 연속으로 스케이팅을 같이 하였습니다.
그림 3. 시청 앞 광장에서 스케이팅
2) 연구진행 및 학술대회 발표
Dr. Gordon의 뇌파연구는 초창기부터 양이청 (binaural hearing) 기능의 소실에 따른 청각피질의 발달장애를 밝히는 것인데, 이는 일측성 청각 (unilateral hearing) 기간이 길어지면 양측 청각피질이 모두 잘 들리는 한쪽 귀에 선호반응(aural preference)을 보이게 되고, 이 기간이 길어지면서 청각피질의 비정상적 선호반응이 비가역적이 되어 난청귀에 대한 청각재활의 효과가 감소한다는 것입니다. 초창기 연구는 양측 전농인 아동에서 인공와우이식을 양쪽 귀에 시행할 때 양쪽 귀에 대한 이식수술을 시간간격을 두고 시행하는 경우와 동시에 시행하는 경우를 비교하였고, 최근에는 일측성 전농인 아동을 대상으로 난청인 귀에 인공와우이식을 시행하였을 때 aural preference의 변화를 연구하고 있으며, 이 뇌파연구가 연수 연구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소아 대상의 연구이므로 보호자의 협조 아래 장난감 등을 이용해 아동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으나 연구실 동료들의 도움으로 20여명의 일측성 난청 아동에서 인공와우이식 수술 후 정기적인 추적관찰을 하면서 60여회의 뇌전도 실험자료를 얻어 분석을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결과는 2019년 5월 International Hearing Loss Conference (Niagara-on-the-lake, ON, Canada)에서 포스터 발표를, 2019년 7월 CIAP (2019 Conference on Implantable Auditory Prosthesis, Lake Tahoe, CA, USA)에서 구연발표의 기회를 얻었으며, 많은 해외연구자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학회 발표 후 추가분석을 마치고 현재 논문 제출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림 4. CIAP 2019 발표
3) 토론토 생활
직장 문제로 아이들 아빠가 같이 갈 상황이 되지 못하여 초등학교 4학년과 유치원생인 두 아들을 데리고 혼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출근해서 낮에 일하다가 저녁에 퇴근하며 학교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돌봐주느라 숨가쁜 생활을 하게 되었지요. 한국에서는 병원 일을 하느라 주말도 없이 일했는데, 연수지에서는 똑같이 바빴지만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지요. 그래도 연구소 생활이 스케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면이 있어서 한국에서는 잘 참여하지 못하던 아이들 학교 발표회 등 행사도 빠짐없이 가고, 도시락도 싸주고 인터넷을 찾아가며 밥을 해 먹이는 시간이 참 소중했다고 여겨집니다. 가까운 나이아가라 폭포부터, 멀리 뉴욕, 휴양지 칸쿤, 밴쿠버에서 출발하는 디즈니 크루즈까지 여행도 할 수 있는 한 많이 했지만 토론토 인근에서 apple picking을 하고 알을 낳는 연어를 본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림 5. 추수감사절 시즌 인근 농장의 corn maze
토론토의 겨울은 길어서 11월부터 눈이 오고 5월 Victoria day 전까지는 겨울 옷을 넣을 수 없는데, 첫해 겨울에 눈이 정말 많이 와서 아이들이 매일 학교에서 눈놀이를 원없이 했던 것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세계 어디나 다 그렇지만 토론토도 한인 커뮤니티가 크게 형성되어 있어서 토론토 엄마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아이들 학교를 통해 만난 친구들은 아직도 연락을 하며 서로 안부를 묻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인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올해 연수를 가신 분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고 하는데, 2019년 연말에 귀국하는 일정도 정말 운이 좋았다 싶습니다.
길다면 길다 할 수 있는 1년 반의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병원에 복귀하니 또 금방 적응이 되어 언제 다녀왔는가 싶지만, 연수기간 동안 가졌던 마음의 여유와 새로운 경험이 몸에 남아 이것이 재충전이구나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 항상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는 김형종 교수님과 흔쾌히 진료 부담을 나누어 준 홍성광 교수를 비롯하여, 지원해주신 교실과 의료원에 감사드립니다. 또 제 평소 연구분야와 잘 맞는 좋은 연구소를 골라 추천서를 써주신 서울대 오승하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적으로 혼란한 이때에 부디 마음의 평안과 건강을 지키시고 반갑게 마주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