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부모님을 졸라서 산 자전거를 타고 친구들과 골목골목을 누비며 누가 빠른지 경쟁하듯 내달렸던 추억, 넘어지지 않게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주다가 어느 순간 두 바퀴만으로도 균형을 잡으며 자전거를 타는 아이를 보며 뿌듯했던 경험들 있으시죠? 어지럼과 균형에 관심 많은 이비인후과 의사 입장에서 자전거 타기야말로 인간이 건강과 균형 잡힌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확신합니다. 자전거는 첫째, 심폐 지구력 향상과 심장을 튼튼하게 하고, 둘째, 관절의 부담 없이 근육 강화와 균형감각을 향상시키고, 셋째, 콜레스테롤 감소 및 체중관리에 도움을 주고, 넷째, 기억력, 집중력 증가 등으로 인지 기능을 향상시키고, 다섯째, 무엇보다 스트레스 해소 등으로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활개를 칠 때, 고등학교 친구 셋이서 로드 자전거를 빌려 3일 동안 제주도 해안 도로를 한바퀴 도는 여행을 한 뒤, 자전거의 매력에 푹 빠져 본격적으로 로드 자전거를 구입하고 주말엔 서울과 경기도의 유명 자전거 코스를 즐기는 한편, 일 년에 한번은 일주일 정도 시간을 내서 본격적인 자전거 여행을, 해외 학회 참석 기간 동안 잠깐 짬을 내서 자전거를 타고 있습니다. 이번 기고문을 통해 제가 경험한 낯선 나라에서의 자전거 라이딩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모쪼록 글을 다 읽을 때 즈음, 어떤 자전거가 나에게 어울릴지 유튜브를 검색하는 자신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1. 자전거 투어 전문 여행사를 통한 라이딩
아직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해외 자전거 전문 여행사가 없는 실정이긴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영국의 Marmot 여행사(https://marmot-tours.co.uk)를 통해 유럽 자전거 투어를 갑니다(그림 1). 2022년 프랑스 알프스 라이딩, 그리고 2023년 슬로베니아 라이딩을 다녀왔는데, 올해에는 예상치 못한 의료 농단 사태로 인해 신청했던 안식월이 취소되는 바람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여행의 개요를 설명드리면 참가자들은 본인의 자전거를 가져가던지, 여행사에서 자신의 사이즈에 맞는 자전거를 빌려서 3일에서 7일 동안 자전거를 타고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게 됩니다. 매일 아침 숙소를 출발해서 자전거를 타고 다음 숙소로 이동하는데 두 대의 대형 밴이 다음 숙소에 가져갈 짐을 싣고, 라이더들이 이동하는 코스를 오가면서 마실 물과 간식, 그리고 간단한 수리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만약 라이딩을 하다가 너무 힘들면 대형 밴에 자전거를 싣고 다음 숙소로 갈 수도 있습니다. 짧고 비교적 평탄한 클래식 코스와 상급자를 위한 챔피언 코스로 나뉘어 라이더의 실력에 따라 선택해서 사이클링을 즐길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클래식 코스도 버거웠습니다.)
처음 참가했던 알프스 라이딩은 높은 봉우리들을 넘나들면서 즐기는 경치도 멋졌지만, 특히 세계 최고의 자전거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Le Tour de France)의 유명 코스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지 가능하면 언젠가 다시 참가하고픈 마음이 있습니다(그림 2). 다음 해의 슬로베니아-이탈리아 북부 코스에는 제가 속한 병원 교수 다섯 명이 참가해서 고된 병원생활에서 벗어나 낮에는 땀 흘리고, 저녁마다 와인을 곁들인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한 행복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낯선 곳에서 자칫 길을 잃거나, 도로 주행 중 자동차 때문에 위험하지 않을까요? 자전거 코스 대부분이 산맥을 넘어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길이 복잡하지 않고 여행사에서 제공한 GPS 파일을 따라가거나, 스마트폰 지도만 볼 줄 알면 목적지까지 마음껏 페달을 밟을 수 있습니다. 유럽 사람들 대부분이 자전거를 소유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자동차를 몰 때에도 자전거를 위협하거나 방해하는 일이 없고, 특히 산악 지형을 올라갈 때는 자동차가 드문드문 다니기 때문에 우려했던 것보다 안전한 라이딩이었습니다. 앞으로 건강과 시간이 허락한다면 매년 참가하고 싶은 자전거 여행상품입니다.
2. 해외 학회 참석 기회를 이용한 라이딩
해외 학회에 발표, 혹은 강의 기회가 있어 참석할 때 학회 기간 앞뒤로, 혹은 중간 하루 정도 짬을 내서 자전거를 타곤 합니다. 2014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11차 International Tinnitus Seminar에 참석했을 때, 학회가 끝난 다음날 귀국 비행기 탑승까지 꽤 많은 시간이 남아서 호텔에서 자전거(지금 생각해 보면 ‘따릉이’ 비슷한 자전거였네요.)를 빌려서 베를린 시내를 다녔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GPS도 없고, 베를린 지도도 없는데, 참 용감(?)했다고 밖엔 생각 들지 않는군요. 주로 호텔 근처 여기저기를 다녔는데,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 여러 장소를 돌아보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의 도시들은 주로 평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베를린도 유럽 대부분의 도시처럼 평야에 위치하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기에 무난한 환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최근에는 2023년 1월 두바이에서 열렸던 IFOS에 강사로 참석했는데, 학회 시작 하루 전 두바이 내륙에 위치한 Al Qudra 사이클링 트랙(https://www.visitdubai.com/en/places-to-visit/al-qudra-cycling-track)에서 자전거를 빌려 라이딩 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두바이에는 워낙 보고 즐길 거리가 많고, ‘사막에서 자전거를?’ 하면서 의아해하시는 분들 계시죠? 사막 한 가운데 86km에 달하는 자전거 전용 도로를 설치해서 누구나 무료로 원하는 만큼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자동차가 전혀 다니지 않고, 자전거도 거의 안 다녀서 온전히 홀로 고독한 라이딩을 즐길 수가 있죠. 고요한 사막 한가운데 오직 자전거 체인 소리와 제 거친 호흡 소리만이 들리는 멋진 경험이었습니다(그림 3). 사막의 모래바람에 자전거 도로가 덮이지 않도록 아침저녁으로 매일 도로 위의 모래를 치우는 트럭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막 자전거 라이딩 코스의 유일한 단점은 라이딩 도중 물이 부족하면 좀 힘들어집니다. 중간에 물을 공급받을 장소가 없기 때문에 미리 물을 충분히 마시고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올해 2월 하와이에서 열린 Pacific Rim Otolaryngology Update에 참석해서 이틀에 걸쳐서 오아후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경험을 했습니다. 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 기념관, 진주만 전쟁 기념관을 거쳐서 Dole 파인애플 농장을 지나기까지 푸른 바다를 오른편, 혹은 왼편에 두고 멋진 풍광을 즐겼네요(그림 4). 그렇지만, 하와이는 자동차가 워낙 많고,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서 자전거 타기에는 그다지 좋은 조건은 아닙니다. 혹시 나중에 하와이에서 자전거 타려고 계획하시는 선생님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3. 자전거를 가져가기, 혹은 빌려 타기
온전히 자전거 라이딩 만을 위한 투어를 갈 때는 제 자전거를 가져가고, 하루 이틀 자전거를 타려고 할 때는 현지에서 빌려서 탑니다. 자전거를 가져갈 때는 우선 자전거 분해 및 조립에 관한 공구나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자전거 전용 캐리어가 필요하죠. 대부분 항공사는 운송 수수료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자전거 캐리어를 싣고 갈 수 있으니까 사전에 확인하면 좋습니다. 자전거 캐리어를 들고 갈 때 주의해야 할 점으로는 첫째, 내 소중한 자전거가 손상받지 않도록 꼼꼼히 잘 포장해야 하고, 둘째, 목적지까지 비행기를 갈아타고 가야 하는 경우 도중에 분실 위험이 있으므로 가급적 경유하지 않는 항공편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작년 슬로베니아 자전거 투어 때는 제 자전거 캐리어가 투어 시작 사흘째 도착하는 바람에 초반 몸에 맞지 않는 자전거를 빌려 무리하게 타다가 아킬레스건 부상을 입고, 이후 일정 역시 제 컨디션으로 자전거를 타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낯선 장소에서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는 미리 계획을 잘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자전거 전용 GPS도 좋지만 스마트폰용 자전거 전용 GPS 앱이 있으므로 이를 잘 이용하면 원하는 장소에 마음껏 다녀올 수 있죠. 자신만의 자전거 코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스트라바(https://www.strava.com) 앱을 이용할 수 있고, 스마트폰용 GPS 앱으로는 Ride with GPS (https://ridewithgps.com)을 이용하면 좋습니다. 그렇지만, 특별한 계획 없이 여기저기를 다니더라도 라이딩 도중 예상하지 못했던 멋진 장소를 발견하거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전문 바이크 샵에서 자전거를 대여해도 좋지만, 호텔에서 제공하는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공공 자전거를 타도 충분히 자전거 라이딩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꼭! 자전거 헬멧을 써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헬멧을 따로 가져가지 않을 경우에는 비용은 더 들지만 전문 렌탈샵에서 자전거와 안전장비 일체를 대여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자, 이제 낯선 장소에서 자전거를 즐길 마음의 준비가 되셨나요? 자전거 타기를 통해 좀 더 활기차고 건강한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림 1. 영국의 Marmot 여행사 홈페이지. 이곳을 통해 유럽 곳곳의 유명 자전거 코스 여행을 예약할 수 있다.
그림 2. 알프스 자전거 여행 중 유럽에서 차로 갈 수 있는 두 번째로 높은 산 정상에서 한 컷
그림 3. 두바이 Al Qudra 사이클 트랙. 사막 한가운데 오직 자전거를 위해서 86km의 사이클 전용 트랙을 만들어 놓았다. 라이딩 중 사막 동물들과 오아시스를 만날 수 있다.
그림 4. 하와이 학회 중간 짬을 내서 자전거 라이딩. 멋진 바다와 풍광을 바라보며 페달을 밟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