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정통으로 맞았다. 작년을 시작으로 코로나가 휩쓸고 지나간 이비인후과 개원가는 처참하기 그지없다. 대학 시절, 개원가의 왕자라고 들었던 이비인후과는 이제 없고 겨울의 싸늘한 바람만 느껴질 따름이다.
8년 전, 2명의 직원을 데리고 처음 병원을 열었을 때가 기억난다. 둘 밖에 없는 직원은 사이가 좋지 않아 정말 열심히도 싸워 걱정이 많았는데, 지금은 근무시간 제한으로 두 명을 데리고 개원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서 더 고민이 많을 것 같다. 그래서 새로 개원하는 곳은 무인 수납기 등을 이용해서라도 수지타산을 맞추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래도 폐업을 하는 곳들이 속출하고 있다. 감염환자를 최전선에서 보는 우리에게 남은 것은 어려움뿐이다.
그림1. 개원 시 2층 진료대기실
그래서 요즘도 항상 그런 고민을 한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가? 10년 뒤의 우리 병원은 어떤 모습으로 되어 있을까? 그러한 고민을 항상 하고 있지만, 대개는 예측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인 것 같다. 수면 질환을 보기 시작한 것은 뭔가 큰 그림을 그리고 시작을 했던 것은 아니다. 2층 외래가 좁아 공간을 만들고 싶었고, 나도 편법세무적 인테리어를 하고 싶었지만 집이 없었고(지금도 없고), 7층에 있던 정체모를 업체가 나가며 공간이 남는다는 건물주 연락을 덥석 문 것이 수면진료의 시작이다. 수액실만 덩그러니 설치를 할 수는 없어서, 수술실을 만들었고, 공간이 좀더 남아서 수액실이 넘치면 겸사겸사 이용해도 되겠다는 생각에 수면검사실을 만들었다. 새로 만드는 공간이다보니 인테리어에 욕심이 생겨 과하게 한 느낌은 있지만, 보면서 뿌듯했고 채워지지 않는 수면검사를 보면서 아프기도 했다. 준비 과정에서 너무 생소한 분야라 어려움이 많았지만,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주셔서 너무 못나지 않은 수면검사실을 마련할 수 있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지금 같다면 불가능할 얘기지만, 그 때는 그냥 진료를 보다가 코골이가 있다고 하면, 평가를 하고 필요하면 검사를 하는 정도로도 검사를 조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면질환을 전혀 모르는 임상병리사를 교육시키는 과정은 쉽지 않았고, 수면다원검사 결과를 판독하는 것은 나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책을 보고, 학회를 다니면서 공부를 하면서 직원을 교육했고, 그 결과 검사장비가 1개에서 3개로 늘어났지만, 검사가 없는 날이 많아 직원이 낮, 밤 근무가 뒤죽박죽이 되는 엉망인 날들이 꽤 오래 지속되었던 것 같다. 궁여지책으로 주변 원장님들과 지인들에게 수면검사에 대해 알리고, 세미나와 지역주민대상의 강의도 하고 여러 방면을 모색해 보았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대신 이런 것들이 조금씩 쌓이다 보니, 수면위내시경을 하다가 산소가 떨어지는 환자를 보내주시거나, 주변 치과에서 입모양을 보고 무호흡이 있을 것 같다고 의뢰를 하는 경우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 후 힘들어하는 직원을 위해, 수면기사를 더 채용하여, 수면 검사 판독과 양압기 관리 그리고 외래 기타 검사 등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인력은 계속 충원되어, 수면 기사는 5명이 되었고, 기사들은 숙달이 되었지만 검사가 별로 없다 보니 홍보를 위한 마케팅 직원을 뽑게 되었다. 마케팅에는 3요소(기획-디자인-바이럴)가 있다고 해서 마케팅부서를 차리게 되어 결국 수면으로 들어온 수입은 직원들 월급 및 기타 부대 비용으로 상쇄되는 진귀한 일이 벌어졌다. 결국 양압기가 효자 노릇을 하게 된다.
양압기는 과거의 보청기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보청기 시장은 절대적으로 민간업체에 자리를 내어준 상태이다. 그리고 현재 이비인후과는 주된 영역인, 감염 환자가 급감했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외치면서 어지럼증, 보청기 등에 대한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이미 기울어진 시장에서 우리의 입지는 너무 좁다. 물론, 양압기를 운용하는 것은 귀찮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비용적인 이득이 별로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업체에 위탁해서 운용을 하는 곳과 병원에서 직접 임대를 하고 관리를 하는 곳의 질적인 차이는 장기적으로 병원의 경쟁력 상승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면 인증의가 중요한 문제이지만 서로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좀 줄이고, 이런 장기적인 문제에 대해 서로 손잡고 발전적인 방향에 대한 논의를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수면검사를 운용하는 병원에서도 시작이 좀 귀찮을 수도 있지만, 10대 정도만 운용해 보아도 어느 정도 감이 잡힐 것이고, 현재 있는 인력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중에 몇 년이 지났을 때 양압기가 효자 노릇을 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수면무호흡증만 보더라도 공부를 해야 할 것이 많이 있다. 하지만, 환자를 보다 보면 잠을 못 자서 오거나, 코는 골지 않는데 그냥 자는 것이 불편해서 오는 환자분들을 마주하게 된다. 참 난감한 상황인데, 먹는 약을 가져오면 슬퍼지기까지 한다.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던 때에 주변 원장님이, 수면에 관한 원서 북리딩을 제안하셨는데, 사실 항상 요약집에 의존해오던 나에게 북리딩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일단 호기롭게 해보겠다고 하고 첫 장을 보기 시작했는데, 1장을 넘기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문의 시험 볼 때와는 다르게, 책에서 습득한 내용이 다음날 환자 볼 때 도움이 되는 것을 느꼈고, 학회에서만 요약된 지식을 습득하려 했던 내자신이 좀 한심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중 유럽수면인증의 제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솔깃하긴 했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는 수트를 입는 것 같은 느낌에 웃어 넘겼다. 몇 주의 시간이 지나 첫번째 북리딩이 끝났다. 책 한권을 다 읽었다는 뿌듯함이 밀려오고, 왠지 시험을 보면 합격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에 시험을 보기로 하고 코로나가 시작되기 직전에 독일 수면세미나에 참석 이와 관련된 강의를 듣고, 원서 접수를 하였다. 원서 접수 과정이 상당히 복잡한데, 대한수면호흡학회 2021년 3월호에 재무이사 조규섭교수님의 상세한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http://Sleepbreathing.org) 작년에 처음으로 온라인으로 시험이 대체되었고, 시험은 다행히 합격을 하긴 했지만, 앞으로 세부적인 내용을 좀더 채워 나가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 든다. 그 이후 환자를 보거나, MSLT같은 검사를 시행할 때도 기존의 방법들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찾아보고 좀더 좋은 방법으로 모색하게 해준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본격적인 수면 관련 세미나를 위해 새롭게 건물 9층까지 확장하여 작은 아카데미와 수면검사실을 만들었는데, 코로나가 나의 발목을 잡았다. 그래도 혹시 누군가 나에게 유럽수면인증의 과정에 대해 묻는다면,
“손이 많이 가는 과정이지만, 충분히 할 만한 가치가 있다” 라고 답변을 해주고 싶다.
10여년을 치열하게 공부하여 의대에 들어가고, 또 10여년을 치열하게 수련하여 전문의를 따고, 개원가로 뛰어든 이비인후과에게 코로나로 인한 지금의 칼바람은 무섭기 만하다. 환골탈태의 과정이라고 생각해도 너무 비극적이다. 올 해 수면인증의가 풀리고, 수면시장에 변화가 생기겠지만, 혼란 속에서 작은 등대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나자신부터 다잡고 채찍질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면정책관련 불만들이 많다. 물론 여러 이해관계와 과정들이 복잡하므로 어쩔 수 없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옳은 방향의 정책을 수립해, 어려운 의료환경에 작은 도움이 되고, 수면학문의 발전과 저변확대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으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