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다녀온 지 몇 년 된 해외 연수기를 의뢰받고, 가물가물해진 기억을 되살려봅니다.
2020년 3월, COVID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기 시작할 때 미국 연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연수지는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UCSD)의 allergy lab으로,
기존에 대전성모병원에서 하던 기초 연구를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전에 거기로 연수를 다녀오신, 고려대 김태훈 교수님께 부탁드려서 PI 교수님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연구실의 책임지도 교수는 유태인이시고, 기초를 연구하신 Eyal Raz 교수님이었습니다.
처음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도착하자마자, 주에서 락다운(lockdown)을 선포해서 집에서 ‘stay at home’ 하면서 한 달을 보낸 후에야 실험실에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실험실에서는 allergy에 관한 쥐를 이용한 기초 실험 파트에 배치되어 이것저것 실험을 배웠습니다. 내가 소속되었던 allergy 파트는 한국인 박사가 맡고 있어서, 언어의 장벽 없이 실험도 쉽게 배우고, 이것저것 잘 가르쳐 주었습니다. 덕분에(?) 연수 기간 제 영어실력은 거의 늘지 않았습니다. 쥐의 allergy에서 dendritic cell의 기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또 그 당시에 COVID 때문에 우리 실험실에 소속된 외국인 석사나 박사 과정 학생들이 대부분 본국으로 돌아간 상태여서, 실제로 실험을 진행할 인원이 매우 제한적이라서, 본인도 이것저것 기초적인 것까지 배워서 해볼 수 있었습니다.
실험실 안에서, 가장 좌측이 PI이신 Eyal Raz 선생님
UCSD의 기초 실험실로 연수를 가게 되어서, 실재 임상은 전혀 접하지 못 한 부분이 많이 아쉽기는 합니다. 추후에 연수 갈 선생님들은 임상교수가 PI를 맡고 있는 실험실로 연수를 가게 되면, PI에게 부탁해서 임상을 같이 보는 방법도 좋을 것 같습니다. 본인의 PI는 임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 기초 교수라서 이 부분은 아쉽습니다. 또 기초 실험을 처음부터 결과까지 다 보려면 1년은 좀 짧은 기간인 것 같습니다
내 사부이고, 실험에 대해서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 준 이지형 박사와 함께 실험실 건물 앞에서
일반적으로 임상으로 연수를 가면 시간적인 여유가 더 있고, 기초로 가면 많이 바쁘다고 알려져 있고, 실제로 맞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기초로 가도 시간적 여유가 있기는 합니다. 한국에서보다는 퇴근 시간도 빠릅니다. 보통 평소 때도 쥐를 잡는 날이 아니면 오후 3시 정도면 퇴근이 가능하고, 미국은 월요일이 휴일인 날이 많아서, 실험이 끝나고 금, 토, 일, 월 해서 가족들과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었습니다. COVID 때문에 대도시는 별로 못 갔지만, 미국은 나라가 많이 넓어서 국립공원 등 갈 데가 많이 있었습니다. 운전하고 가도 가도 길이 끝이 없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저희도 가족들과 연휴 때는 계획을 세워서 여기저기 국립공원을 다녔습니다. 특히 샌디에이고는 서부 지역이어서 Joshua tree 국립공원, death valley, 라스베이거스를 거쳐서 Grand canyon, Bryce canyon, Zion canyon 국립 공원 등을 운전해서 가볼 수 있었습니다. 비현실적인 자연의 경관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또 할로윈 데이, 독립 기념일, Thanks giving day 등 다양한 미국 문화와 축제를 경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추후 연수를 계획하는 선생님들을 위해서 샌디에이고에 관해서 말씀드리자면, 샌디에이고 자체는 일 년 내내 온화한 날씨로, 여름에도 그늘에 들어가면 덥지 않고, 겨울에도 그리 많이 춥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바닷가가 가까이 있어서 조금만 운전하고 가면, 바닷가에서 멋진 일몰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치안도 매우 좋은 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미국에서 은퇴 후에 살고 싶은 도시 상위권에 드는 게 괜한 이유가 아닐 듯합니다. 다만 그러다 보니 물가는 비싸서 미국 내에서 수위를 달리는 듯합니다. 제가 연수 갔을 때 2 bed 2 bath가 월세로 2000불 중반에서 3000불 정도 했는데, 현재는 많이 올라서 5000불 가까이 된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살기가 좋아서 현재도 많은 선생님들이 연수 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인마트도 샌디에이고에만 3개 정도 있고, 코스트코도 2개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참고로 저는 미국으로 연수가면 다들 단독 주택에 사는 줄 알았는데, 샌디에이고나 스탠포드 같은 도시로 연수 간 사람들은 처음 가면 credit이 없어서 단독주택 월세는 못 구하고, 아파트 월세만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단독 주택이나, 아파트 월세가 비용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현지에 지인이 있는 경우에는 지인을 통해서 단독주택 월세를 구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여기서 아파트라고 하면 우리나라같이 매우 높은 고층 아파트가 아니고, 보통 2-3층 하는 아파트입니다. 또 도시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예전에 스페인 식민지여서, 스페인 문화가 많이 남아있고, 음식도 남미식의 유명한 타코도 맛볼 수 있습니다. 또 흑인보다는 히스패닉계 사람들을 보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참고로 어린 애들이 있는 경우에는 근처에 동물원, Sea World, USS 미드웨이 박물관, 레고 랜드 등이 있어서 가족들과 가기 좋고, 또 차로 2시간 거리의 LA에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디즈니랜드가 있습니다.
Arch’s canyon 국립공원에서
Mount Rainer 국립공원에서
또 미국 가면 자동차는 필수인데, 보통 연수 가면 carmax를 통해서 중고차를 구입하는데, 혹시 연수지에 아는 지인이 연수 나가 있으면, 지인이 쓰던 차를 물려받는 게 경제적으로 유리하고, 물건도 무빙 세일을 통해서 인계받는 것이 유용한 듯합니다. 저도 근처 캘리포니아에 연수 나가있던 안과 친구를 통해서 차와 물건을 많이 인계받았습니다. 어차피 1-2년 정도 밖에 안 쓸 거라서 물려받는 것도 미국 생활에서 생활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인 듯합니다. 샌디에이고는 연수 나가 있는 선생님들이 많아서 연수자 단톡방이 많이 활성화되어 있고, 한인 인터넷 커뮤니티도 잘 되어 있어서, 그 사이트를 통해서 중고 물품을 구매하기도 했습니다. 교통은 미국에 살아본 사람은 아시겠지만, 대부분 자차로 운전해서 다녀야 하고, 샌디에이고는 교통 체증은 별로 없었던 듯합니다. 또 미국 서부가 대부분 그런지는 몰라도, 샌디에이고는 동양인이 워낙 많이 살기도 해서 그런지 인종차별 등은 별로 못 느꼈던 것 같습니다. 샌디에이고가 캘리포니아 남쪽이고, 멕시코에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도시라서 그런지 흑인 비율은 정말 적고, 히스패닉 계열 사람은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발보아 파크 - 샌디에이고에서 갈만한 곳으로, 만국박람회를 기념해서 만들어진 곳으로, 여러가지 박물관 등이 있다.
또한 다른 문화에서 살아보니, 그동안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 있던 시기가 미국 대선과 겹쳐서 주별 승자독식제가 있다 보니, 캘리포니아는 워낙 민주당 지지세가 강해서 오히려 대선 후보들이 유세하러 오지 않는다는 것이 아이러니했습니다. 우리나라 태극기 부대처럼 Jeep 차에 성조기를 꽂고, 행렬을 이루어서 다니는 자동차의 무리들도 보였습니다. 대선 패배 후에 트럼프의 부정선거 음모론과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뉴스를 보면서,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알았던 미국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는 트럼프가 재집권을 한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한국에서는 병원과 멀어서, 거의 주말부부로 보냈는데, 미국에서는 매일 저녁 가족들과 얼굴을 보고,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것에 매우 만족합니다. 그래서 한국에 와서는 가족들과 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다른 문화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지내다 보니 가치관의 변화도 겪게 되고, 보는 시야도 달라지는 것 같고, 좋은 경험인 것 같습니다.
제 글이 이미 연수를 다녀오신 선생님들에게는 추억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고, 추후 연수를 계획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에게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