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COVID-19 때문에 매일 ‘백신’관련 내용이 뉴스에서 끊이지를 않는다. 백신(vaccine)의 어원은 암소를 뜻하는 라틴어 ‘vacca’ 로부터 기원한다. 암소와 백신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나이가 좀 있는 세대라면 아마도 다음 문구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옛날 어린이들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재앙이 호환, 마마, 전쟁이라면…” 1990년대 비디오 영상 맨 앞에 항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건전비디오 공익광고의 첫 멘트인데 여기서 ‘마마’는 천연두를 뜻한다. 천연두는 두창(痘瘡), 마마(媽媽)로 불리기도 하는 질환으로 천연두바이러스(variola major)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이다. 기원전 1000년에 살았던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미라에서 발견된 농포성 발진이 천연두 감염에 의한 것으로 추측될 정도로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를 괴롭혀 온 질환으로서 18세기 이전까지 유럽지역에서만 매년 40만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치사율이 50%가 넘는 전염병이다.
이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해서 고대부터 사용된 방법이 천연두 환자의 딱지, 고름같은 감염 물질을 피부에 바르는 인두법(variolation)이다. 인두법은 천연두를 예방할 수는 있었지만, 실제 감염이 발생하여 사망하기도 하고, 다른 이에게 천연두를 옮길 수도 있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런데 영국의 의사인 에드워드 제너가 자신의 고향 마을에서 우유를 짜는 사람들이 우두(소의 천연두)에 감염된 후에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하여 실제 천연두가 아닌 우두를 접종하는 방법(종두법)을 1796년에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종두법은 인두법에 비해 훨씬 안전하였고 천연두 예방효과도 뛰어나서 유럽을 시작으로 전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제너는 이 방법이 암소로부터 왔기 때문에 ‘vacca’라는 단어를 사용하였고 ‘vaccine’ 이란 용어는 그 유명한 루이 파스퇴르가 처음으로 정립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천연두 백신의 성공 이후 인류는 각종 전염병의 백신 연구에 매진하였고, 수많은 백신이 실생활에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총 17종이 필수예방접종 지원대상으로 지정되어 국가 차원에서 전국민 예방접종을 지원하고 있다. 17종류의 예방접종 중에 다른 것들과 성격이 좀 다른 예방접종이 있는데 바로 사람유두종바이러스(Human papilloma virus, HPV) 예방접종이다. 다른 예방접종들이 감염성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면 HPV 예방접종은 ‘자궁경부암 예방접종’ 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것처럼 ‘암’을 예방하기 위한 예방접종이다. HPV 는 지금까지 대략 100여 종의 아형(subtype)이 밝혀져 있고 이중 16형과 18형은 대표적인 발암성 HPV로써 자궁경부암의 약 70%는 이 두 유형에 의해 발생한다. HPV예방접종은 자궁경부암외에도 구강 성교를 통해 감염되어 발생하는 구강암, 인두암의 예방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처럼 현재의 예방접종은 단순히 감염병을 넘어 ‘암’을 예방하는 단계까지 발전해 있다.
에드워드 제너의 성공 이후 19세기~20세기에 걸쳐 천연두 백신 접종이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천연두 감염자는 크게 줄어들었고 WHO는 1979년 천연두의 박멸을 선언했고, 천연두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박멸에 성공한 전염병으로 역사에 기록이 되었다. 1796년 에드워드 제너가 첫 종두법을 시행한 이후 천연두 박멸 선언까지는 183년이 걸렸다. 이후 2011년에 우역 또한 박멸이 선언되어 현재까지 박멸에 성공한 감염병은 총 2 종류이다. (우역의 경우 임상적으로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이 미미 했기 때문에 천연두 박멸과는 의미가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COVID-19이 우리 세상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 이제 2년이 되어간다. 그리고 올 2월 말 화이자를 필두로 아스트라제네카, 모더나, 얀센 등의 백신 접종이 국내에서 시작되었으나 전세계적인 물량 부족으로 접종율이 높지 않아 아직 집단면역을 담보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2021년 8월 6일 WHO가 발표한 [COVID-19 Vaccine tracker and landscape]에 의하면 현재 전세계에서 clinical trial phase I~III에 진입해 있는 COVID-19 백신 후보는 총 63종이다. 이 중 nucleic acid(RNA, DNA) 타입이 20개로 가장 많고, whole virus 또는 viral vector가 각각 15 종류이며 그 다음이 whole virus 타입이다 (https://www.who.int/publications).
전통적인 백신은 천연두 백신처럼 병원성을 약화시킨 변형된 병원체를 투입하여 항체 형성을 유발하는 약독화생백신(live attenuated vaccine) 형태로 많이 만들어 졌다. 병원체가 투여되는 것이기 때문에 가벼운 증상을 유발하긴 하지만 자연 감염과 매커니즘이 유사하기 때문에 강력하고 오래 지속되는 면역반응을 유발한다. 홍역, 유행성이하선염 (볼거리), 풍진, 로타바이러스, 천연두, 수두, 황열 백신 등이 대표적 약독화백신인데, 코로나 바이러스의 병원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직 COVID-19의 약독화생백신 개발 소식은 없다. 열, 방사선, 약물 등으로 증식이 불가능하도록 비활성화 시킨 병원체를 주입하는 사백신(inactivated vaccine) 또한 오랜 된 백신 제조 방법인데 안전성이 높지만 낮은 면역 반응과 짧은 지속 기간으로 반복 접종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A형 간염, 독감, 소아마비, 광견병 백신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중국에서 개발한 시노백이 대표적인 COVID-19의 사백신이다. 전체 병원체가 아닌 항원성을 가진 바이러스 껍데기 또는 그와 유사한 입자 (바이러스유사입자백신, VLP, Virus like particle)를 주입하여 항체 형성을 유도하기도 하는데 두경부외과의사에게 매우 친숙한(?) 자궁경부암 백신인 가다실, 서바릭스가 여기에 해당한다.
작금의 코로나 유행은 백신 생산에 있어서도 혁명적인 변혁을 가져 왔는데 바로 mRNA 백신의 등장이다. 백신의 매커니즘은 병원체의 항원을 우리 몸이 인지하여 항체를 형성하게 하는 것인데, 위에서 언급한 방법들은 항원이 되는 병원체 전체 또는 일부를 우리 몸에 주입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항원의 ‘유전정보’ 만을 전달하여 항체 형성을 유도하는 방식이 있는데 바로 바이러스벡터백신이다. 이 백신은 항원 유전정보를 병원체와는 다른 종류의 아데노바이러스(adenovirus) 혹은 렌티바이러스(lentivirus)의 껍질로 포장하여 우리 신체로 전달한다. 벡터 바이러스는 복제가 불가능하며, 병원성도 없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대표적인데, 독감 백신에 많이 사용된 침팬지의 아데노바이러스 5형(Ad5)에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스파이크단백질에 해당하는 유전자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개발됐다. 아데노바이러스를 운반체로 이용한 백신의 단점은 이미 이 바이러스에 면역이 있거나 1회 접종 후 면역이 새로 형성되면 추가 접종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얀센 백신은 아데노바이러스26형(Ad26)을 벡터로 사용하는데, 이는 Ad5 에 비해 Ad26이 혈청학적으로 대중에게 적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DNA백신, mRNA백신과 같은 핵산(nucleic acid)백신은 항원 정보를 바이러스벡터의 도움 없이 플라스미드(plasmid) 형태로 전달 하여 우리 몸에서 항원 단백질을 자체 합성한 후 이에 대한 항체생성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즉 병원균의 항원을 직접 투여하지 않았지만, 유전물질을 이용해 세포 안에서 생합성함으로써 투여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내고 바이러스 벡터가 가진 단점도 없는 매우 이상적인 백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가장 많은 20개의 백신이 이 형태로 개발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DNA백신은 세포 안으로 들어가 mRNA로 전사되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 과정 자체를 생략한 것이 mRNA백신으로 조금 더 진보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DNA백신은 25년 전부터 개발되어 왔지만 동물 대상 백신 만이 상용화 된 상태였다. mRNA 백신은 그 개념이 약 15년전에 처음 제시되었는데 지금까지는 mRNA의 구조적 안정성이 DNA에 비해 매우 취약해 빠르게 분해된다는 문제가 있어 상용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런데 ‘필요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전세계적인 코로나 대유행은 단 1년만에 mRNA백신을 우리 곁에 가져다 주었다. 누구나 맞고 싶어하는 화이자, 모더나 백신이 바로 mRNA백신이다.
아마 지금처럼, 전 세계가 하나의 마음으로 하나의 질병을 퇴치하려고 노력한 적은 인류 역사상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노력이 어떠한 결과를 가지고 올까? 코로나가 천연두처럼 박멸이 될지, 아니면 암의 원인이지만 필수 접종에 포함되어 한 두 번 접종으로 예방이 되는 HPV처럼 될지, 아니면 인플루엔자바이러스처럼 매년 가을마다 접종을 해야할지 범부인 나로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다만 먼 훗날 우리 다음 세대에서는 다음과 같은 공익광고를 시청하길 바랄 뿐이다.
“옛날 어린이들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재앙이 암, 코비드 감염, 마약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