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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이비인후과학회 Korean Society of Otorhinolaryngology-Head and Neck Surgery

학회발자취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창립

대한이비인후과학회는 1947년 8월 30일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강당에서 창립총회와 제 1차 학술대회를 개최한 조선이비인후과학회가 모태이다. 창립총회에서 이비인후과학의 진보발달과 회원 상호간의 친목도모를 위하여 학회 창립을 의결한 후 '조선이비인후과학회'라 칭하게 되었다.

해방 후 1945년 8월 17일 조선의사회가 발족되었으나 우리 대한이비인후과학회는 창립되지 못하였고, 1947년 5월 10일 조선의사회가 조선의학협회로 재정립되면서 우리 학회도 창립되게 된 것이다.

창립총회에서 대한이비인후과학회의 초대회장으로는 박계양이 선출되었으며, 정기섭(이외 미상) 등이 대의원과 평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창립당시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강당에서 있었던 학술대회에는 25명 정도의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의사가 참석하였다.

당시 학회활동은 1950년 이전까지는 매년 봄.가을 두차례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제 2차 학술대회는 1948년 5월 29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구개편도세망육종 4례'를 포함한 9편의 연제로 개최되었으며, 30명의 회원이 참여하였다. 정기총회에서는 박영돈이 2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제 3차 학술대회는 1948년 11월 9일 세브란스의과대학에서 개최되었고, 8 연제가 발표되었다. 1949년 5월 9일 임시총회와 제 4차 학술대회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개최되었으며, 동년 10월 23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정기총회와 제 5차 학술대회가 있었다. 연제는 10편이었고 연구논문의 발표도 있었다. 정기총회에서 3대 회장에 이병현, 부회장에 이용복과 현석린이 선임되었다.

개화기 대한이비인후과학회

1.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진료의 시발

문헌상 우리나라 이비인후과 진료의 시작은 미국 선교사 알렌의 보고서에 기술되어 있다. 1886년 알렌의 '서울지역 건강에 대한 보고서'를 보면 서울의 이비인후과 질환에 대한 통계와 코수술에 대한 자료가 기술되어 있다. 당시 제중원 선교사의 보고서에도 이비인후과 질환의 통계자료가 제중원 진료기록부에 소개되어 있다.

제중원의 상병분류에는 인두염, 편도선염, 고실염(tympanitis), 비출혈, 실성증(aphonia), 난청, 이염, 이루, 고막천공, 귀지, 이명, 구개종양, 비강폴립 등의 순으로 기록되어 있고, 수술은 비강폴립제거술의 자료가 등재되어 있다.

1906년 내부병원(광제원)에 고용되어 근무하였던 일본 군의관 內田徒志가 이비인후과와 외과의 진료를 전담하여 교육, 연구, 진료의 삼위일체를 갖춘 이비인후과 진료를 시작한 기록이 있다2). 이를 계기로 이비인후과가 정식으로 분리되었고, 이비인후과 간호부 3명을 임명하여 이비인후과 간호업무도 시작되게 되었다. 초기에는 한국인과 외국인(일본, 미국) 근무자가 동수이었으나, 1910년 한일협약으로 일본인도 한국관리가 될 수 있음에 따라 병원운영의 대부분이 일본인들에게 넘어가게 되어 이비인후과의 발전은 암흑기를 맞게되었다.

한국인에 의한 이비인후과의 진료의 시발은 1907년 대한의원 교육부 1회 졸업생이자 초대 조선의사회 회장이었던 박계양이 대한의원에서, 그리고 1908년 제중원의학교 1회 졸업생인 홍석후가 세브란스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한 기록이 있다.

조선총독부병원의 이비인후과 질환에 관한 기록에 의하면 1914년에서 1915년까지 전체 입원환자 중 이비인후과 질환의 빈도가 7.4%, 외래환자 중 이비인후과 질환은 6.4%이었다. 1918년에는 외래환자 총 278,068명중 이비인후과 환자가 5.71%이였고, 1921년에는 외래환자 381,987명중 11.7%가 이비인후과 환자였다. 1926년에는 입원환자 총 104,609명중 이비인후과 질환이 4.6%, 외래환자 총 523,095명중 10.8%가 이비인후과 환자로서 당시 이비인후과의 진료비중이 상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16년 조선총독부의원이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으로 되면서 이비인후과를 포함하여 임상 9개과를 설치한 기록이 있으며, 1924년 설립된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은 이비인후과를 포함하여 임상 11개과가 있었다. 1921년 세브란스의학교의 제 2대과장으로 취임한 홍석후가 미국 뉴욕대학교에서 10년동안 이비인후과학의 대학원과정을 이수하고, 1932년 귀국하면서 후두경, 기관식도경을 도입함으로써 근대 이비인후과학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2.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의사단체활동

우리나라 이비인후과의사 단체활동으로서는 1931년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일본이비인후과학회 조선지방회의 발회식을 개최하고 제1회 모임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후 3개월마다 한번씩 개최하는 지방회 모임을 제19회까지 개최하고, 1936년 제20회는 평양의학전문학교에서, 동년 제21회는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에서, 1937년 제22회는 적십자병원에서, 1937년 제23회 지방회 모임은 부민병원에서 개최하였으며, 매년 9, 10월에는 지방회 총회를 개최하였다. 1940년에는 경성제국대학 小林靜雄이 일본이비인후과학회장에 선임되어 회장제에 의한 일본이비인후과학회 총회가 당시 경성제국대학 의학부(현 서울의대)강당에서 개최되었다.

대한이비인후과학회 형식의 모임은 일본이비인후과학회 경성지부로서 연 1회 정도의 학회가 개최되었고,강일영,김윤옥,명대혁,민찬호,박영돈,심상천,우형직,이병현,이장남, 이호림, 장명환,장석익,한기택, 최익진, 차명훈 외 다수의 우리나라 이비인후과의사들이 활동하였다.

한국동란과 대한이비인후과학회

한국동란 초기에 의학교육과 학술활동은 중단되었고, 전쟁을 전후하여 유능한 이비인후과의사들인 박영돈, 강일영, 최익진, 우형직, 차명훈, 장석익, 이장남, 이호림 등이 납북되거나 실종되었다. 한국동란으로 대부분의 회원은 군에 입대하고, 일부는 월북 또는 납치되어 소수의 회원만이 남게 되어서 대한이비인후과학회의 모임도 중단되게 되었다.

1951년 6월 정부가 '대학교육에 대한 전시특별조치령'을 발령함에 따라 부산 광복동 소재의 동주여상에 천막 등으로 가건물을 짓고 '전시연합대학'을 발족하였다. 각 대학의 학생들을 소집하여 정기섭, 김홍기, 백만기 등이 강의를 하게 됨으로써 한국동란 중반부터는 이비인후과 교육이 재개될 수 있었다.당시 부산 신창동에 건립된 피난병원에는 이비인후과 진료와 임상실습이 가능하게 되었다.

1951년 학술대회를 개최하지 못하였던 우리 학회는 1952년 5월 10일 부산 이화여자대학교 임시교사에서 재건총회를 개최하였으며, 동년 5월 10일에 제 7차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2~3 연제를 발표하였다. 학술대회 후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총회를 개최하여, 제 4대 회장에 정기섭, 부회장 박희진, 김홍기, 간사에 백만기, 신홍수가 선임되었다.

1953년 5월 29일 제 8차 학술대회 및 총회가 부산 광복동의 연합의과대학에서 개최되었고, 7월 27일 휴전협정 후 각 대학들은 서울로 복귀하였다.

한국동란은 우리 민족의 비극이었지만 의료계에는 다국적 군의관들로부터 서구식 선진의료기술을 접할 수 있어 우리나라 의학을 급속하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동란 중 스칸디나비아 3국은 이동병원을 설립하였으며, 1958년에는 국제연합 한국재건단과 더불어 국립의료원을 설립하여 선진 의료기술을 전수하였다.

학회지 창간

대한이비인후과학회지는 1956년 12월 15일 임시총회에서 박소암과 이병현의 제안으로 학회지를 발간할 것을 의결한 후, 1958년 6월15일자로 '耳鼻咽喉科'(K.M.A. Journal of Otolaryngology)라는 잡지명으로 창간되었다.

창간호의 표지는 김기령이 직접 도안하였으며, 본문은 5호활자 2단횡조 모조지로 표지포함 64쪽 46배판이었다. 인쇄는 문선사에서 하였고, 발행인은 윤희식, 편집인은 이병현, 인쇄인은 윤상하이었다.

창간사는 당시 대한이비인후과학회장 윤희식이 기술하였으며,윤상하의 '제6차 만국이비인후과학회경과보고', 종설, 원저, 증례, 회의록 등의 순이었으며, 15편의 논문을 게재한 것이 우리 학회지의 창간호이다.

전문의 제도 도입

1951년 9월 25일 공포된 국민의료법(법률 제 221호) 제4조 '의료업자는 법령으로 결정된 바에 의하여 주무장관의 허락없이 그 전문과목을 표방할 수 없다' 는 조항에 의하여 전문의 제도가 도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국민의료법의 후속조치로 동년 12월 25일 보건부령 제 11호 국민의료법의 시행세칙이 공포되고, 동 세칙 34조에 전문과목으로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안과, 피부비뇨기과, 정신과, 정형외과, 방사선과 등 10개과목이 규정되어 있었고, 제 35조에는 전문과목 표방허가를 얻기 위하여 필요한 수련연한을 5년으로 하고 해당과목에 대한 전문의 고시도 시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비인후과 전문의 제도는 1954년6월 21일 서울의대에서 9차 학술대회 및 총회당시 전문과목 표방자격에 관한 것이 토론되어 시행되게 되었다. 당시 총회에서 이비인후과 전문과목 표방허가자격을 3년이상 종합병원에서 종사하고 4년이상 개업한자, 4년이상 종합병원에서 종사하고 2년 이상 개업한 자 등으로 결정하여 84명에게 전문과목표방 자격을 부여하였다.

자격부여 기준으로 종래의 의국원 또는 교실원 제도를 인정함으로써 정기섭, 양회일이 첫 전문과목 표방허가 자격을 부여받았다. 당시 이비인후과와 안과를 복수전공하였으므로 추후 안과로 전과하였던 자와 원인미상에 의한 누락된 자는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전문의 번호에서 제외하여 84명중 67명만이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전문의 번호를 부여받았다.

의료법 개정으로 전문의 고시제도가 확정되는 과정에 1958년부터 미국식 수련제도인 인턴·레지던트제도를 법령화하게 되어, 1960년 5월 24일과 25일 양일간에 제 1차 전문의 고시가 실시되어 11명의 전문의를 배출하였다. 14명의 응시자중 제 1차 고시 합격자는 추성수, 이상한, 박해수, 최지환, 최창수, 김영원, 김기령, 전남규, 홍순욱, 이양선, 김윤근 등 11명이며, 동년 10월에 시행된 제 2차 전문의 고시 합격자는 전지일, 이용복, 노관택, 김정곤 등 4명으로 총 15명이 1960년에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였다.

지방지부 발족

1957년 3월 25일 부산의대 강당에서 부산·경남지부 결성식을 시작으로 4월 전북, 5월 대구 · 경북, 6월에는 중앙지부가 결성되어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산하에 4개의 지방지부가 발족되었다.

지부의 발족전에는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중앙회의 지시나 업무에 대하여 상호협조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왔으나,지방지부가 결성됨에 따라 중앙회와의 결속이 보다 강화되고 독자적인 업무수행과 학술활동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의료상황 발전

1961년 3월 20일 혁명위원회는 국민의료법을 폐기하고 새 의료법을 제정 공포하여, 대한의학협회가 의사정기신고와 보수교육을 관장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의사협회의 활동을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한이비인후과학회도 회원관리가 체계화되었으며 학문연구도 궤도를 찾게 되었다. 1962년에는 학술상도 제정하여 포상하였다.

1966년 정부의 의료균점시책(전국민과 대한민국 전역에 대하여 평등한 의료혜택을 부여하자는 원칙)에 의하여 외국 차관으로 첨단 의료장비를 도입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전국 각지에 첨단 이비인후과 장비를 갖춘 병원들이 설립되었다. 수술현미경, 베케씨 청력검사기와 임피던스 청력검사기 등이 도입되어 중이염 수술과 난청의 평가에 많은 발전이 있었으며, 냉동수술(cryosurgery)이 보급되어 동통과 출혈을 줄일 수 있는 수술법도 소개되었다.

창립당시 25명 내외이던 대한이비인후과학회 회원이 1960년도 말에는 정회원 196명, 준회원 72명으로 늘어났으며, 학회의 규모도 팽창하여 총무, 학술, 재무, 고시, 편집부로 분담하여 발전하게 되었다.

「귀의 날」 행사

귀의 날은 1958년 11월 이달호가 발의하고 정기섭이 '구'와 '귀'가 발음이 비슷하다고 하여 9월 9일을 '귀의 날'로 제정하였으며, 1961년 의약관계 신문잡지에 귀에 관한 특집을 마련하여 '귀의 날'을 홍보하였다. 백만기가 특집을 기획하였으며, 연제는 이병현의 중이염, 신홍수의 농아, 백만기의 난청을 가져오는 질환, 신규식의 귀의 청각생리, 김홍기의 난청의 치료 등이었다. 1961년 9월 18일 의사시보 제 325호에 '귀를 보호하자' 라는 제목으로 대한이비인후과학회에서 '귀의 날'을 제정한 취지와 연혁을 소개함으로써 국민행사로 발전시키고 국민보건향상에 이바지하였다.

1962년 8월 18일 임원회에서 필히 '귀의 날' 행사를 갖기로 하였고, '귀의 날' 설정요지를 작성하여 당국의 승인을 얻고 후원을 건의하며, 사업으로 무료상담과 진료, 강연회 개최와 보도기관을 동원하여 선전하자는 사항을 의결하여 보건사회부의 승인을 얻었다. 귀병에 대한 무료상담과 진료는 9월 9일이 공휴일이었으므로 9월 10일에 실시하였고, 의학관계 신문, 잡지에는 '귀의 날' 특집 프로그램을 게재하여 획기적인 대민홍보 업적을 성취하였다.

제1회 귀의 날 강연회(1962년 9월 9일 오후 7시, 서울시민회관 소강당)

지방지부 활성화

부산 · 경남지부 결성식을 시작으로 전북, 대구 · 경북, 중앙지부가 발족이후 1960년 3월 광주 · 전남, 1965년 3월 대전 · 충남지부가 결성되어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산하 지방지부가 확대되었다

학술대회도 한국동란중 제 7, 8차 학술대회를 부산에서 개최한 것을 제외하고 서울에서만 개최되었으나, 1961년 4월 9일 처음으로 부산 · 경남지부가 중심이 되어 부산의대 강당에서 제 21차 학술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1966년 10월 9일부터는 부회장을 3인제로 증원하여, 이중 한명 이상을 반드시 지방지부 회원에서 선임하여, 지방지부의 부회장이 춘계 학술대회를 관장하도록 함으로써 지방지부의 학회활동을 활성화하였다.

대한기관식도과학회

1965년 대한이비인후과학회 회원들이 대한기관식도과학회를 창립할 것을 계획하였다. 1966년 4월 23일 수도의과대학에서 25명의 회원들이 모여 '대한기관식도과학회(The Korean Bronchoesophagological Society)의 창립 발기준비위원회' 모임을 갖고 발족시켰다.

초대 회장에는 이병현, 부회장 김중환, 총무 김기령, 간사에 김선곤, 노관택이 선임되었다.

대한기관식도과학회는 1967년 4월 2일 대한의학협회 분과학회로 인가받아 의학협회 정회원 학회로 활동하게 되었다.

대한청각학회 발족

1966년 5월 9일 노관택이 주축이 되어 19명의 회원이 모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대한청각학회 발기인대회를 가진 후, 1966년 5월 15일 창립총회를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개최하여 대한청각학회(The Korean Audiological Society)를 발족시켰다.

대한청각학회의 초대회장으로는 김홍기가 선임되었고 총회회장에 김중환, 총무 노관택, 간사 김기령, 함태영, 문영일 등이 선출되었다. 창립총회에서 회칙과 정관이 제정되었으며, 대한기관식도과학회와 함께 대한청각학회는 대한이비인후과학회의 분과학회 창립의 시발이 되었다.

국제학회 회원국 가입

1962년 아.태이비인후과학회, 1966년 국제이비인후과학회의 회원국으로 가입하였다. 이후 국제이비인후과학회연맹, 국제청각학회, 국제음성언어의학회, 국제기관식도과학회, 국제연 합의학회 등 여러 국제학회의 회원국이 되었다.

회원중 다수가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외국학회의 회원자격을 취득함으로써 국제화의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1965년 제8회 국제이비인후과학회 총회에는 김기령이 한국대표로 참석하여 아시아-오세아니아 이비인후과학회의 창설 발기인이 되었다.

전공의 수련제도 확립

이비인후과 전공의 제도는 1957년 '전문과목 표방허가 심사위원회'에서 전국 8개 의과대학 부속병원과 60개 병원을 수련병원으로 지정한 것을 시작으로 한다. 이중 이비인후과 수련병원은 8개 대학병원과 10여개의 종합병원이 이비인후과 전공의를 수련할 수 있게 되었다. 보건사회부 훈령 12조에도 전문의 자격취득에 관한 임상 실지훈련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었으나, 실제 법규로 제정된 것은 1964년 개정된 보건사회부령 제 148호 의료법 시행규칙이 실행되면서 부터이다.

대한이비인후과학회의 전공의 수련연한은 전문과목 표방허가제도 출범 당시 졸업 후 5년 임상실지수련의 원칙에 의거하여 5년이었으나, 인턴제도가 도입된 후 무의촌 파견근무를 일시적으로 의무화하면서 레지던트 연한이 4년으로 단축되었다.

학회 이사장 제도 신설

1975년 10월 11일 제 50차 대한이비인후과학회 학술대회 및 정기총회에서 이사장제도를 신설할 것을 의결한 후 회칙을 개정하여, 1975년 11월 1일 초대 이사장 김홍기, 부이사장 정세기, 감사 이영길, 김진영, 총무 및 사업 노관택, 재무이사에 전지일을 선임하였다.

개정된 이사장 제도는 기존의 1년 임기의 회장제는 유지하고, 임기 3 년의 이사장과 부이사장 1명을 신설하여 선임토록 하였다. 회칙 18조의 상임이사회 규정도 이사장 제도의 도입에 준하여 이사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또는 이사 과반수의 요구가 있을 때에 이사장이 상임이사회를 소집하여 업무를 수행하도록 개정하였다. 상임이사회에 회원자격심사, 사업계획, 예산구성 및 결산, 회칙과 규정제정, 학술대회, 회원의 자격변경 및 결산, 본회자산 등에 관한 사항을 부여함으로써 원활한 학회업무의 수행을 도모하고자 하였으며, 다양하고 전문화된 학회업무를 관장하게 함으로써 학회 발전의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의료보험제도 도입

1976년 12월 22일 '의료보험 확대실시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1977년 7월 1일 500인 이상이 근무하는 사업장을 의료보험 적용대상으로 하도록 법제화되었으며, 1978년에는 교원과 공무원이 의료보험 적용대상으로 되었다.

당시 의료보험 적용에 대하여 무관심하였던 타 임상과들과는 달리 대한이비인후과학회에 대한 의료보험 적용 진료행위 및 수가는 당시 재무부장이었던 전지일을 비롯하여 주양자, 노관택, 소진명 등이 일본, 미국, 대만의 의료보험 수가를 철저히 분석하여 정부에 보고함으로써 대한이비인후과학회 회원들에게 많은 기여를 하였다.

수련교육 변화

전문의는 진료의사로서의 지식과 기술은 물론 교육 및 연구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하에,1971년 전문의 고시 자격요건으로 논문 편수를 정하여 제출할 것을 의무화 하여 전공의 수련기간중 학술활동의 질적 향상을 기하게 되었다.

1973년 전문의 자격시험의 관리가 국립보건원으로부터 대한의학협회로 이관됨에 따라 출제와 전형에 있어서 대한이비인후과학회의 자율권이 신장되었고, 그 관리도 보다 엄격하게 되었다. 상임이사회에 고시부가 신설되어 전문의 고시업무와 전공의 수련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다.

국제학술대회 개최 및 발족

아시아-오세아니아 이비인후과학회 개최

1975년 10월 11일 제 50차 대한이비인후과학회 학술대회 및 정기총회에서 이사장제도를 신설할 것을 의결한 후 회칙을 개정하여, 1975년 11월 1일 초대 이사장 김홍기, 부이사장 정세기, 감사 이영길, 김진영, 총무 및 사업 노관택, 재무이사에 전지일을 선임하였다.

개정된 이사장 제도는 기존의 1년 임기의 회장제는 유지하고, 임기 3 년의 이사장과 부이사장 1명을 신설하여 선임토록 하였다. 회칙 18조의 상임이사회 규정도 이사장 제도의 도입에 준하여 이사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또는 이사 과반수의 요구가 있을 때에 이사장이 상임이사회를 소집하여 업무를 수행하도록 개정하였다. 상임이사회에 회원자격심사, 사업계획, 예산구성 및 결산, 회칙과 규정제정, 학술대회, 회원의 자격변경 및 결산, 본회자산 등에 관한 사항을 부여함으로써 원활한 학회업무의 수행을 도모하고자 하였으며, 다양하고 전문화된 학회업무를 관장하게 함으로써 학회 발전의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세계음성의학자회(CoMeT)의 연차 국제심포지엄 개최

1986년 7월 30일부터 8월 1일까지 세계음성의학자회의 제 13차 국제심포지엄이 서울 롯데호텔에서 개최되었으며, 아시아에서 최초로 개최된 세계음성의학자회 국제심포지엄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개회식에서는 김기령 학술대회장의 환영사와 문태준 대한의학협회장 및 세계음성의학자회 Lucio Croatto회장의 축사가 있었으며, 국내외의 음성의학자 30여명이 모여 성황리에 학술대회를 가졌다. 심포지엄 마지막날에는 서울시내와 민속촌 관광 등으로 국제간의 우의를 돈독케하였다.

한일이비인후-두경부외과 학술대회 발족

한일이비인후-두경부외과 학술대회가 한국과 일본 이비인후과학회 의사들의 학술교류 및 상호발전과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요구된 바, 1983년의 제 5차 아×태학회와 1985년의 미국 마이애미 세계학회에서 양국 이비인후과학회 교수들이 만나 한일이비인후-두경부외과학회를 발족시키자는 의견이 구체화 되었다. 한국측의 김기령, 노관택과 일본측의 山本 馨, 齊藤英雄의 합의로 한일학회가 태동되어 양국간의 의학지식을 교환하고 있다.

1985년 11월 23일 제주도 그랜드호텔에서 발기인대회를 개최하게 되었으며, 1986년 11월 2일부터 3일까지 제 1차 한일이비인후-두경부외과 학술대회가 서울 롯데호텔에서 개최되었다. 매 2년마다 한국과 일본에서 교대로 정기학술대회를 갖고 있으며, 1996년 5월 9일부터 11일까지 제 6차 학술대회가 일본 모리오까에서 개최되었다.

세계이비인후과의학자회 가입

'세계이비인후과의학자회(Collegium Oto-Rhino-Laryngologicum Amicitiae sacrum : CORLAS)'는 1926년 네덜란드의 크로닝겐에서 창설된 것으로,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벨지움, 영국, 프랑스, 독일, 스칸디나비아 등의 학자들이 모여서 창립하게 된 모임이다.

우리나라는 1983년 파리 총회에서 김기령과 전성균(재미)이 최초의 정회원이 됨으로써 회원국이 되었고, 1986년 노관택, 1990년 김종선, 김희남, 1992년 정태건(재미), 1994년 김덕언(재미), 1995년 민양기, 1996년 김광문이 정회원이 됨으로써 현재 3명의 원로회원과 6명의 정회원이 있다.

세계이비인후과의학자회(CORLAS)의 위성심포지엄 유치

1988년 10월 23일부터 26일까지 일본 하꼬네에서 개최된 학술대회를 계기로 그 곳에 참석한 M. Portman, Robert Kimura, M. lgarashi, C. Conraux, Paul Van den Broek, M. Wayoff, David Lim, S K. Juhn 등을 서울로 초청하였으며,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울 라마다르네상스호텔에서 위성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학술대회장은 김기령, 간사는 노관택이었으며, 국내외 의학자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을 이루었다.

전공의 연수교육 체계화

1982년 춘계학술대회부터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전공의들에 대한 체계적인 연수교육을 실시하였다. 연수교육은 춘계와 추계로 연 2회로 실시되었고, 개원의를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되었다. 1985년부터는 추계학술대회와 별도로 학술대회 전날 또는 다음날을 택하여 전공의 연수교육을 연 1회 실시하였다. 1989년부터는 춘계와 추계로 나누어 연 2회의 전공의 연수교육이 학술이사 주관하에 체계적으로 시행되어 오고 있다.

전공의 수련연한 변화

1980년부터 전공의 무의촌 파견근무가 폐지되면서 전공의 수련연한이 4년에서 3년으로 단축되었다. 수련기간의 단축으로 전공의들의 임상경험이 부족하다는 견해가 있어, 1990년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전공의 입국자부터는 수련기간이 다시 4년으로 환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한후두음성언어의학회 발족

1980년 10월 8일 대구 동인호텔에서 대한후두음성언어의학회가 발족되었다. 초대 회장에 김기령이 선임되었으며, 발기인 및 창립당시의 회원구성은 김기령, 문영일, 노관택, 이종원, 김종남, 김희남, 김홍수, 김광문 등이었고, 발족 당시 회원수는 19명이었다.

창립 당시 제55차 대한이비인후과학회 학술대회의 일환으로 제 1차 대한후두음성언어의학회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으며, 학회운영이 본 궤도에 오를 때까지 대한이비인후과학회 및 대한기관식도과학회와 합동형식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키로 하였다.

대한후두음성언어의학회는 1985년 세계음성언어의학자회(CoMeT)와 국제음성언어의학회(IALP)에 가입한 후 현재까지 긴밀한 국제교류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대한후두음성언어의학회는 매년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동시에, 1985년부터는 학회지를 발행함으로써 한국의 음성언어의학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전국민의료보험제도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의료보험 적용대상자가 늘어나게 되었다. 1981년에는 1백인 이상, 1982년에는 16인 이상, 1988년에 5인 이상의 사업장 근무자는 모두 의료보험 적용대상이 되었다.

의료보험환자 및 업무가 늘어나면서 1984년 대한이비인후과학회에 보험부를 신설하여 정부의 의료보험 정책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하였으며, 1989년부터는 전국민이 의료보험적용 혜택을 받게되어, 이비인후과 진료환자 98%이상이 의료보험 시혜대상이 되었다.

의료보험수가가 타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이비인후과는 전국민의료보험 적용으로 환자 수가 늘어나면서 타과로부터 의료보험의 상대적 수가가 높다는 저항이 많아 현재까지도 이비인후과 의사들의 환자진료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학회조직 재정비

1991년 전공의 교육을 전담하는 수련부와 의료분쟁을 전담하는 의무부가 신설되어, 학회가 8개 부서로 개편되었다. 1995년 학회주요행사를 담당하는 기획부, 국제업무를 전담하는 국제협력부와 무임소이사를 신설하여 11개 상임이사로 확대 개편하였다. 회원은 1,715명의 정회원과 586명의 준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한이비인후과학회는 각 지회를 육성하고 회무집행의 폭을 넓히기 위하여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산하에서 각 지회, 분과학회 및 연구회와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이루고 있다. 학회사무실은 1991년 매입하였으며(대표자 : 김진영), 1992년 9월 25일 등록명칭을 대한이비인후과학회 (대표자 : 김영명, 소재지 : 서울 강남구 삼성동 143-19, 예림빌딩 708호)로 신규등록하였다.

분과학회 및 연구회 발족

대한이과학회

1990년 김종선 외 이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은 11인의 발기인이 모여 이과학의 기초연구를 활성화하고 전문적인 임상경험을 토론하기 위한 모임을 발족하고자 하였다. 1990년 6월 1일 서울 라마다르네상스호텔에서 창립총회와 제 1차 학술대회를 개최함으로써 대한이과학회가 창립되었다. 초대 회장 김종선, 총무 황순재가 선임되었다.

대한이과학회는 연 1회 정기학술대회를 갖고 있으며, 학술대회마다 이과학 분야의 최근 관심사 또는 난제를 심포지움으로 택하여 많은 발전을 기하고 있다. 1990년 제 2차 학술대회에는 미국의 Paparella, Morizono교수를 초청하였고, 1991년 제 4차 학술대회에는 김덕언, 류재현, 유태준, 임종재, 전성균, 정태건 등 미국에서 이과학 분야의 기초 및 임상연구를 하고 있는 저명한 교수들을 초청하여 특별 강연회를 가졌다. 현재까지 15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이과학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대한두경부외과학회

1990년 4월 27일 홍원표 외 두경부외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은 15명의 발기인이 모여 두경부외과학의 기초연구 및 임상분야의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상호발전 및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을 갖고자 하였다.

1991년 2월 23일 연세의대에서 대한두경부외과학회 창립총회 및 제 1차 학술대회를 개최하였고, 초대회장 홍원표, 부회장 추광철, 총무 김광현, 간사 성명훈을 선임하였으며, 창립당시 회원은 39명이었다. 제 2차 학술대회는 1991년 7월 6일 부산의대에서 개최하였고, 당시 연 1회의 정기학술대회를 스키리조트에서 동계학술대회로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다. 제 3차 학술대회는 1992년 2월 28일 국내에서는 최초로 용평 스키리조트에서 '이비인후과 영역의 레이저수술'이란 심포지움과 더불어 성황리에 학술대회를 가졌다. 제 5차 학술대회를 1993년 2월 6일 수안보 스키리조트에서 개최하였으며, 1994년 제 6차 학술대회부터 제 10차 학술대회까지 정기학술대회를 용평 스키리조트에서 개최하고 있다. 1997년 2월 14일 제 10차 학술대회는 '비부비동 암종'을 주제로 일본 암연구소병원의 Kamata 교수가 초청되어 특강을 가졌다.

대한비과학회

1990년 9월 22일 박인용 외 비과학에 관심이 많은 17인의 회원이 주축이 되어 비과학연구회 창립총회를 갖고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초대 회장 박인용, 부회장 민양기, 총무 이정권, 학술 이봉재, 섭외 박재훈, 재무 윤상원, 간행 양경헌 등이 선임되어 비과학연구회가 발족되었다. 창립당시 공직회원은 물론 개원회원의 참여가 의외로 많아 대한이비인후과학회원들의 비과학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음을 알 수 있었다.

1993년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대한비과연구회가 주관이 되어 세계비과학술대회를 서울 롯데호텔에서 23개국 600명의 회원이 모인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1993년 12월 1일에는 대한비과학회로 확대,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한비과학회는 그 동안 많은 학술활동을 활발히 추진하여 왔다. 비과학연구회부터 학술대회를 연 2회씩 개최하였는데, 매회 10-15편의 최신 연구결과와 최신 지견들이 발표토론되었고, 다수의 외국 저명교수들도 초청되어 새로운 지식을 보급하였다. 대한비과학회로 개편된 후 1994년 5월 대한비과학회지를 창간하였으며, 1996년 11월부터 영문잡지로 발간하고 있다. 1997년 3월 현재 정회원수는 369명이며, 이중 봉직의 160명, 개업의 209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원은 회장 1인, 부회장 2인, 명예회장 1인, 상임이사 13인, 고문 14인, 평이사 41인, 감사 2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제 분과학술대회 개최

세계비과학회 개최

1993년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서울 롯데호텔에서 제12회 "International Symposium on Infection and Allergy of the Nose"(ISIAN)대회가 개최되었다. 초청강연 3 연제와 자유연제 150편을 발표한 이 학술대회는 해외에서 274명, 국내에서 373명 등 총 647명이 참가하였다.

학술대회장은 박인용이 선임되었으며 성공리에 마칠 수 있도록 공을 세웠다. 이 학술대회는 국내 비과분야의 폭넓은 연구영역과 21세기로의 진취적인 의욕을 전세계에 홍보함으로써 우리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국제학회를 성공리에 개최하게 된 것은 조직위원회를 중심으로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가와 노력의 결실이었다. 학회 회원의 논문의 질도 국제대회에서 손색이 없었으며, 훌륭한 외국의 학자들과 학문 교류로 국내 이비인후과 발전에 기여하였다.

제 3차 아시아-오세아니아 두개저외과학회 개최

1992년 독일의 하노바에서 'International Federation of Skull Base Society'가 창립되었고, 국내에서는 최길수가 대표자격으로 참석한 후, 제3차 아시아-오세아니아 두개저외과학회를 1995년 11월 2일부터 3일까지 서울 워커힐호텔에 유치하였다. 학술대회장 최길수, 부회장 김종선, 조직위원장 정희원이 선임되었으며, 여러 분야 임상의사들이 협력하여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석학들을 초대하였다. 제3차 아시아-오세아니아 두개저외과학회는 국내에 최초로 유치된 두개저 분야 국제학회로 그 의미가 있다.

국내에서는 두개저 분야에 관심있는 이비인후과, 신경외과, 성형외과를 포함한 36명의 발기인이 1994년 11월 5일 대한두개저외과학회 창립총회를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개최하였으며, 황충진이 초대회장으로 선임되었다. 대한이비인후과학회의 발기인으로는 홍원표, 김종선, 김희남, 장선오, 이원상, 이광선, 이철희, 최은창, 윤주헌이 참여하였다. 1996년 12월 제2대 회장으로 김종선을 선출하였고, 현재는 학회운영이 본궤도에 올라 대한두개저외과학회 소식지를 발간, 수술수기의 개발을 위한 연수교육, 국내학술지의 발간을 추진하는 등 국내 학술활동의 활성화를 이룩하였다. 국제학회와 적극적인 교류를 함으로써 1998년 2월 14일부터 미국 하와이에서 한국, 미국, 일본이 합동으로 두개저외과학술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제5차 아세아-태평양 청각장애학술대회 개최

아세아-태평양 청각장애학술대회는 1984년 홍콩 청각장애인 복리촉진회가 아세아-태평양 지역의 청각장애인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국제학술대회 개최를 위한 협의체를 결성한 것이 시발이 되었다.

1986년 12월 홍콩에서 제 1차 대회를 개최한 후 제 4차까지 기타 아세아-태평양 지역에서 개최되었으며, 노관택이 제 3차 학술대회부터 한국대표로 참여하면서 제 5차 아세아-태평양 청각장애학술대회를 한국으로 유치하게 되었다. 제 5차 학술대회장은 노관택이 선임되어 1996년 8월 18일부터 22일까지 서울 롯데호텔에서 성공리에 개최하였다.

서울대회의 개최로 우리나라에서도 청력장애인에 대한 복리증진과 재활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였다.

한중의학회 발족(한중이비인후과학회 학술대회)

동북아 협력증진의 시대가 개막됨에 따라 한국과 중국의 상호 공존체계가 정립되고, 동북아 평화공존시대의 서막이 열림으로써 제 1차 한중의학회가 한중 양국간의 학술교류와 우호를 증진하기 위하여 1997년 7월 8일부터 7월 10일까지 중국 북경 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되었다.

한국측은 28개 분과학회에 600여명, 중국측 37개 분과학회에 1,200여명이 참가하였다. 학회기간중 한중이비인후과학회 학술대회로 1997년 7월 9일부터 양일간 이과, 비과, 두경과 분야의 최근 관심사에 대한 심포지움과 자유연제 발표가 있었다. 대한이비인후과학회는 대한의사협회 분과학회중 가장 많은 31명의 회원이 참석하여 한중이비인후과학회 학술교류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학회지 증편

회원들의 학문연구에 대한 열성으로 논문발표가 급증하여 격월간으로 발행되던 학회지가 1995년 제 38권부터는 월간으로 증편되었다. 발행부수는 2,000부로 늘어났으며, 학회소식란을 두어 학회의 주요업무 홍보와 국내외 학술대회 및 연수회 일정들을 수록하여 회원들의 학회지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게 되었다.

1997년부터 학회지 투고규정을 밴쿠버형식으로 개정하였으며, 창간호부터 현재까지 모든 게재논문을 전산화하여 CD ROM으로 제작하였다.

종합학술대회 발족

1994년 5월 9일 당시 이사장 안경성이 각 분과학회장, 연구회장단의 초청 모임을 갖고 종합학술대회 발족을 제안하였다. 각 분과학회 및 연구회의 학술모임이 다양화되고, 지부의 학술모임도 규모가 커져 대한이비인후과학회 관련 학술대회의 회수가 많아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하고, 대한이비인후과학회를 모체로 하여 각 분과학회 및 연구회가 합동으로 종합학술대회를 개최키로 하였다. 학술대회는 매년 춘계에 양일간으로 하고 학술대회 다음날에는 개원의를 위한 학술모임을 갖도록 하였다.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이사장이 학술대회장을 임명하고 학술대회장이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여 대회를 총괄 수행토록 규정하였다.

1995년 4월 29일부터 30일까지 홍원표가 종합학술대회장으로 선임되어 성황리에 종합학술대회를 치르었으며, 현재까지 3차에 걸쳐 종합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연 도 회 장 부 회 장 이 사 장 부이사장 감 사
1 1947-48 박계양
2 1948-49 박영돈
3 1949-50 이병현 이용복
현석린
4 1952-53 정기섭 박희진
김홍기
5 1953-54 정기섭 김홍기
박희진
6 1954-55 이병현 김홍기
양석성
7 1955-56 한기택 김홍기
이명훈
8 1956-57 박소암 한기택
이병헌
9 1957-58 윤희식 한기택
이병헌
10 1958-59 이달호 김홍기
이양선
11 1959-61 양석성 김홍기
박소암
12 1961-63 김홍기 이양선
김영옥
13 1963-65 정대협 명대혁 서상원
백만기 이선철
14 1965-67 김중환 백만기 이선철
최희천 정세기
15 1967-69 백만기 신홍수 이선철
남소영 정세기
16 1969-71 김기령 박해수 이선철
조진규 정세기
17 1971-73 신홍수 김병우 김현수
장인원 주양자
송규현
18 1973-75 김병우 노관택 김현수
지중민 주양자
이종담
19 1975-76 최희천 장인원 김홍기 정세기 이영길
(1 대) 김진영
20 1976-77 김중환 주양자 김홍기 정세기 이영길
(1 대) 김진영
21 1977-78 조진규 전지일 김홍기 정세기 이영길
(1 대) 김진영
22 1978-79 이종담 박춘근 김기령 홍진표 소진명
(2 대) 함태영
23 1979-80 이양선 성창섭 김기령 홍진표 소진명
(2 대) 함태영
24 1980-81 함태영 강주원 김기령 홍진표 소진명
(2 대) 함태영
25 1981-82 박순일 박인용 노관택 백기우 소진명
(3 대) 김종남
26 1982-83 백만기 김현수 노관택 백기우 소진명
(3 대) 김종남
27 1983-84 송규현 김현수 노관택 백기우 소진명
(3 대) 김종남
28 1984-85 장인원 박현교 김선곤 김정곤 김종남
(4 대) 김중강
29 1985-86 이선철 홍원표 김선곤 김정곤 김종남
(4 대) 김중강
30 1986-87 박해수 전경명 김선곤 김정곤 김종남
(4 대) 김중강
31 1987-88 백준기 박인용 김병우 김유성 이기영
(5 대) 정덕희
32 1988-89 성창섭 조태환 김병우 김유성 이기영
(5 대) 정덕희
33 1989-90 신규식 박종준 김진영 김현수 김영명
(6 대) 김종애
34 1990-91 문영일 김기헌 김진영 김현수 김영명
(6 대) 김종애
35 1991-92 박찬일 김영명 김유성 김계숙
(7 대) 유홍균
36 1992-93 강주원 김영명 김유성 김계숙
(7 대) 유홍균
37 1993-94 이종원 안경성 김유성 김대성
(8 대) 송대원
38 1994-95 임현준 안경성 김유성 김대성
(8 대) 송대원
39 1995-96 박춘근 홍원표 김유성 김종화
(9 대) 서병도
40 1996-97 송계원 홍원표 김유성 김종화
(9 대) 서병도
41 1997-98 김춘길 김종선 김영학 전경명
(10 대) 오길상 문성무
42 1998-99 서병도 김종선 김영학 전경명
(10 대) 오길상 문성무
43 1999-2000 김중강 추광철 김영학 김성전
(11 대) 김종애 조승호
44 2000-2001 심윤상
45 2001-2002 차창일 김희남 김성전, 심상열 김길원, 김광현
46 2002-2003 이상흔
47 2003-2004 김광문 황순재 김종화 김종애
(13대) 심상열 이상흔
48 2004-2005 김광현
49 2005-2006 정명현 장혁순 배정보 이상흔
(14대) 조현 심상열
50 2006-2007 장선오
51 2007-2008 이정권 이철희 최종욱 심상열
52 2008~2009 박기현 (15대) 도남용 나기상
2009.4 회장직 폐지
53 2010~2011 최은창 이의석 나기상
(16대) 홍기환 임현호
54 2012~2013 백정환 박철원 임현호
(17대) 홍성수 노환중
55 2014~2015 태경 봉정표 하정도
(18대) 신창식 정필상
56 2016~2017 노환중 양훈식 하정도
(19대) 김익태 김정수
연 도 총 무 학 술 편 집 사 업 재 무
1947-59 없음 없음 없음 없음 없음
1959-61 백만기 김중환 신홍수    
1963-65 김기령 신규식 신홍수 정세기 김진영
1965-67 김병우 박해수 노관택 김선곤 김진영
1967-69 노관택 김선곤 김진영 선덕영 김병우
1969-71 백기우 노관택 이영민 선덕영 서광애
1971-73 차왈보 김영명 강주원 한정수 김종남
1973-75 강주원 문영일 차왈보 김선곤 김기헌
1975-78 노관택 백기우 김선곤 노관택 전지일
1978-81 박인용 문영일 김선곤 노관택 전지일
연 도 총무이사 고시이사 수련이사 학술이사 간행이사 재무이사 보험이사 의무이사
1981-84 김종선 김영명 서병도 차창일 마용섭
1984-87 안경성 김종선 김희남 차창일 유홍균 김유성
1987-89 서병도 추광철 김광문 김광현 안희영 김유성
1989-91 민양기 서병도 황순재 정명현 이형석 오길상
1991-93 김희남 민양기 황순재 전경명 안희영 박재훈 김기헌 안경성
1993-95 이형석 김광문 김광현 조용범 최종욱 조승호 김길원 추광철
1995-97 김광문 김광현 정명현 이상흔 장혁순 채세용 김길원 안희영
1998-99 장선오 정명현 박철원 장태영 이광선 조재식 최종욱 이상흔
2000-2001 백정환 박철원 이철희 이광선 이원상 나기상 최종욱 장혁순
2002-2003 최은창 이철희 이원상 김민식 동헌종 홍기환 노영수 왕수건
연 도 기획이사 국제협력이사(섭외이사) 무임소이사
1995-97 최종욱 박기현 전시영
1998-99 이철희 박기현
연 도 기획이사 섭외이사 무임소이사 감사
2000-2001 동헌종 조중생 조 현
2002-2003 김경래 이광선 이상덕 김길원, 김광현
연 도 총무이사 고시이사 수련이사 학술이사 간행이사 재무이사 보험이사 의무이사
2004-2005 정광윤 최은창 성명훈 이흥만 김민식 노환중 노영수 권삼현
오승하
2006-2007 이병돈 윤주헌 오승하 홍성화 정광윤 노환중 양훈식 도남용
태경
2008-2009 이재서 윤주헌 태경 정원호 채성원 정필상 양훈식 김정수
오승하 조진희
2010-2011 김경수 오승하 박동준 김세헌 채성원 정성민 조진희 송시연
권기환
2012-2013 정원호 김경수 손영익 정종우 김창훈 김정수 조진희 이병주
2014-2015 이승환 김경수 이병주 구자원 김창훈 신승헌 조광재 조형호
정종우 이병돈
2016-2017 이준호 정종우 김세헌 조양선 박경호 김진평 조광재 김진
이승훈
연 도 기획이사 대외공보이사 개원이사 법제이사 교육연구이사
2004-2005 홍성화 차흥억 신창식 오천환  
2006-2007 이봉재 김영모 신창식 봉정표  
2008-2009 이병돈 김영모 홍일희 김경수  
2010-2011 장용주 정원호 김성식 선동일  
2012-2013 이재서 권순영 박동선 최영석  
2014-2015 정원호 우정수 김규식 여승근 김철호
2016-2017 이승환 변재용 최재진 신승헌 김철호
연 도 평 의 원
1959 ~ 1960 한기택 정기섭 윤희식 이병현 이달호 김영옥 최희천 이양선 심상천 진영덕 김중환 명대혁 장원용 김치환 강정호 결성제 조진규
1961 ~ 1962 한기택 박소암 윤희식 이병현 조성민 이달호 양석성 김홍기 김영옥 최희천 이양선 김중환 강정호 결성제 조진규 정대협 이선철 신규식 백만기 신홍수
1963 ~ 1964 한기택 윤희식 이병현 박소암 이달호 양석성 김홍기 김영옥 최희천 이양선 조진규 김중환 박하윤 백준기 남소영 명대혁 강정호
1965 한기택 윤희식 이병현 박소암 이달호 양석성 김홍기 김영옥 최희천 이양선 조진규 김중환 박하윤 백준기 남소영 명대혁 강정호
1966 한기택 윤희식 이병현 박소암 이달호 백준기 양석성 김홍기 김영독 이양선 조진규 정대협 주양자 이영길 김기령 신규식 신홍수 이병숙 노경천 남소영 명대혁 강정호
1967 한기택 윤희식 이병현 박소암 이달호 백준기 양석성 김홍기 김영독 이양선 조진규 정대협 주양자 이영길 김기령 신규식 신홍수 이병숙 노경천 남소영 명대혁 강정호
1968 신홍수 김병우 한기택 윤희식 이병현 박소암 이달호 양석성 김홍기 정대협 김중환 명대혁 이양선 조진규 백준기 신규식 이영길 주양자 최희천
1969 신홍수 김병우 한기택 윤희식 이병현 박소암 이달호 양석성 김홍기 정대협 김중환 명대혁 이양선 조진규 백준기 신규식 이영길 주양자 최희천
1970 백만기 신홍수 김병우 김중환 윤선식 이병현 박소암 한기택 양석성 김홍기 정대협 이선철 명대혁 이양선 조진규 백준기 신규식 이영길 주양자 최희천 김진영 김선곤
1971 백만기 신홍수 김병우 김중환 윤선식 이병현 박소암 한기택 양석성 김홍기 정대협 이선철 명대혁 이양선 조진규 백준기 신규식 이영길 주양자 최희천 김진영 김선곤
1972 김기령 김종곤 김홍기 박소암 박해수 백만기 백준기 신규식 양석성 윤상하 이달호 이병현 이선철 이양선 정세기 조진규 최희천 한기택
1973 김기령 김종곤 김홍기 박소암 박해수 백만기 백준기 신규식 양석성 윤상하 이달호 이병현 이선철 이양선 정세기 조진규 최희천 한기택
1974 김기령 김중환 김진영 김홍기 박해수 신홍수 백기우 백만기 백준기 양석성 윤상하 이병현 이선철 이양선 이영노 정세기 조진규 최희천
1975 김기령 김중환 김진영 김홍기 박해수 신홍수 백기우 백만기 백준기 양석성 윤상하 이병현 이선철 이양선 이영노 정세기 조진규 최희천
1976 김병우 최희천 정세기 윤상하 백준기 이양선 김선조 백만기 이종담 박해수 이시춘 노관택 송규현 김현수 지중민 신홍수 이선철 주양자 김진영 짐중환 김기령 이영노 조진규 백기우 장인원 강주원
1977 김병우 최희천 정세기 윤상하 백준기 이양선 김선조 백만기 이종담 박해수 이시춘 노관택 송규현 김현수 지중민 신홍수 이선철 주양자 김진영 짐중환 김기령 이영노 조진규 백기우 장인원 강주원
1978 백만기 김기령 신홍수 김중환 김병우 박해수 김현수 주양자 신규식 이영호 김봉용 박순일 서광애 박창동 이병숙 서정범 김동조 이양선 최지환 백준기 최희천 장인원 김지연 김영적 이원종
1979 백만기 신홍수 김중환 김병우 박해수 주양자 신규식 이영호 김봉용 박순일 서광애 박정동 이병숙 서정범 김동조 이양선 최지환 백준기 최희천 장인원 김지연 김영적 이원종
1988 백만기 신홍수 김중환 김병우 박해수 주양자 신규식 이영호 김봉용 박순일 서광애 박정동 이병숙 서정범 김동조 이양선 최지환 백준기 최희천 장인원 김지연 김영적 이원종
1981 백만기 신홍수 김중환 김병우 박해수 주양자 이영호 김봉용 박순일 김선우 김정남 한정수 백기우 김기헌 김정곤 박정동 이병숙 서정범 조태환 지중민 백준기 최희천 장인원 김지연 김영적 이원종 이종담
1982 백만기 신홍수 김중환 김병우 박해수 주양자 이영호 김봉용 박순일 김선우 김정남 한정수 백기우 김기헌 김정곤 박정동 이병숙 서정범 조태환 지중민 백준기 최희천 장인원 김지연 김영적 이원종 이종담
1983 백만기 김현수 김홍기 신홍수 김중환 김병우 박해수 주양자 이영호 김봉용 박순일 김선우 김정남 한정수 백기우 김기헌 김정곤 문영일 조진규 김기령 함태영 조태환 지중민 백준기 최희천 장인원 김지연 김영적 이원종 장인원 윤강묵
1984 백만기 김현수 김홍기 신홍수 김중환 김병우 박해수 주양자 이영호 김봉용 박순일 김선우 김정남 한정수 백기우 김기헌 김정곤 문영일 조진규 김기령 함태영 조태환 지중민 백준기 최희천 장인원 김지연 김영적 이원종 장인원 윤강묵
1988 김홍기 백만기 노관택 신홍수 조진규 김기령 김병우 김용봉 김중환 김현수 문영일 이병춘 이영길 주양자 함태영 홍진표 이기진 곽판달 조중환 전경명 김봉희 김종애 백준기 김종덕 송계원 조태환 김지연 김완길 최희천 이종원 김영적 이원종 박순일
1986 김홍기 백만기 노관택 신홍수 조진규 김기령 김병우 김용봉 김중환 김현수 문영일 이병춘 이영길 주양자 함태영 홍진표 이기진 곽판달 조중환 전경명 김봉희 김종애 백준기 김종덕 송계원 조태환 김지연 김완길 최희천 이종원 김영적 이원종 박순일
1987 강주원 김기령 김병우 김용봉 김영명 김현수 노관택 문영일 백만기 신홍수 이병춘 이선철 조진규 주양자 함태영 홍진표 서정범 이시춘 강석호 정홍경 이기진 전경명 김창수 송계원 이재창 백준기 조태환 김종덕 최희천 장인원 이종원 김지연 김완길 오욱근 이원종 최기원 박순일
1988 강주원 김기령 김선곤 김영명 김영학 김종화 김진영 노관택 문영일 백준기 신규식 신홍수 오길상 유방환 유홍균 이선철 이영길 이영노 조진규 주양자 함태영 강석호 김봉희 김창수 서정범 이시춘 이기진 전경명 김종덕 김중강 박인용 성창섭 송계원 이양선 조태환 최희천 장인원 이종원 송규현 윤용주 오욱근 이원종 박찬일 박순일
1989 강주원 김기령 김선곤 김영명 김영학 김종화 김진영 노관택 문영일 박인용 신규식 신홍수 오길상 유방환 유홍균 이선철 이영길 이영노 조진규 주양자 함태영 강석호 김봉희 김창수 서정범 이시춘 이기진 전경명 김종덕 김중강 백준기 성창섭 송계원 이양선 조태환 최희천 장인원 이종원 천경두 윤용주 오욱근 이원종 최기원 박순일
1990 강주원 김기령 김선곤 김영학 김종화 노관택 문영일 박인용 신홍수 유방환 유홍균 이선철 이영길 이영노 조진규 주양자 함태영 박순일 이원종 이상도 반상진 이종원 장인원 최희천 윤용주 천경두 성창섭 조태환 김중강 김종덕 홍순옥 곽석순 추성수 박정동 전경명 박동석 김리석 전시영 조중환 이상화
1991 강주원 김기령 김선곤 김영학 김종화 노관택 신규식 박인용 신홍수 유방환 유홍균 이선철 이영길 이영노 조진규 주양자 함태영 박순일 이원종 이상도 반상진 이종원 장인원 최희천 윤용주 천경두 성창섭 조태환 김중강 김종덕 홍순옥 곽석순 추성수 박정동 전경명 박동석 김리석 전시영 조중환 이상화
1992 강주원 김선곤 문영일 이영노 정덕희 심윤상 김진영 서병도 차창일 추광철 김성일 이인묵 전승하 김종화 송화석 김귀언 문성무 조일균 권평준 김리석 김종애 김창준 박동석 박정동 왕수건 전시영 조중환 이길진 이상화 성창섭 조태환 송계원 김중강 정창근 김종덕 이재창 장인원 이종원 반상원 고광련 윤용주 천경두 윤상원 유장열 신시옥 이상도 박순일
1993 강주원 김선곤 문영일 이영노 정덕희 심윤상 김진영 서병도 차창일 추광철 김성일 이인묵 전승하 김종화 송화석 김귀언 문성무 조일균 권평준 김리석 김종애 김창준 박동석 박정동 왕수건 전시영 조중환 이상화 성창섭 조태환 송계원 송달원 정창근 이재창 김동환 장인원 이종원 반상원 고광련 윤용주 천경두 윤상원 유장렬 신시옥 이상도 박순일
1994 강주원 김선곤 문영일 이영노 정덕희 심윤상 김진영 서병도 차창일 추광철 김성일 이인묵 전승하 김종화 송화석 김귀언 문성무 조일균 권평준 김리석 김종애 김창준 박동석 박정동 왕수건 전시영 조중환 이상화 성창섭 조태환 송계원 송달원 정창근 이재창 김동환 장인원 이종원 반상원 고광련 윤용주
1995 임현준 김선곤 문영일 이영노 강주원 정덕희 심윤상 김진영 서병도 차창일 추광철 박재훈 윤희로 김성일 이인묵 전승하 김종화 김홍은 조일균 이호섭 김주영 정채식 백기우 김종애 김중환 박정동 박춘근 박해수 이상화 이종담 전경명 조중환 성창섭 조태환 송계원 송달원 정창근 김동환 이재창 장인원 이종원 반상원 고광련 홍기환 천경두 윤상원 나기상 신시옥 이상도 박경유 백석인
연 도 평 의 원
1976-78 김기헌 이종석 성창섭 김홍수 박성준 박찬일 조규설 박인용 서병도 이영노 이종담 박춘근 12명.
1979-81 김현수 반상진 박홍진 송규현 박찬일 조진규 지중민 박춘근 조규설 김병화 장인원 이영노 12명.
1982-84 김현수 반상진 박홍진 송규현 박찬일 조진규 지중민 박춘근 조규설 김병화 장인원 이영노 12명.
1985 김기헌 홍약실 성창섭 김홍수 이정탁 박찬일 조규설 박인용 서병도 이영노 이종담 박춘근 12명.
1986 김기헌 이종석 성창섭 김홍수 박성준 박찬일 조규설 박인용 서병도 이영노 이종담 박춘근 12명.
1967 한기택 윤희식 이병현 박소암 이달호 백준기 양석성 김홍기 김영독 이양선 조진규 정대협 주양자 이영길 김기령 신규식 신홍수 이병숙 노경천 남소영 명대혁 강정호
1987 김기헌 김선홍 성창섭 김홍수 박성준 박찬일 박종준 박인용 서병도 이영노 이종담 박춘근 12명.
1988 김종선 안경성 전지일 차왈보 홍원표 김홍수 박성준 박찬일 박종준 이종담 박춘근 정홍경 이재창 13명.
1989 김종선 안경성 전지일 차왈보 홍원표 김지연 박성준 박찬일 박종준 이종담 박춘근 정홍경 이재창 13명.
1990 소진명 김종선 안경성 차왈보 홍원표 박종준 박찬일 조홍주 김지연 송계원 정윤조 이종담 박춘근 13명.
1991 소진명 김종선 안경성 차왈보 홍원표 박종준 박찬일 조홍주 김지연 송계원 유병울 이종담 박춘근 13명
1992 소진명 김봉희 이정창 김성곤 김지연 박찬일 강대형 김종선 박인용 홍원표 10명.
1993 소진명 이길진 이정창 이영구 김지영 박찬일 강대형 김종선 박인용 홍원표 10명.
1994 소진명 최소남 김중강 이영구 김지연 박찬일 최광남 김종선 민양기 홍원표 10명.
1995 김선곤 김영일 안경성 박순일 성창섭 문영일 박찬일 강주원 임현준 김종선 추광철 김희남 민양기 김영학 고경환 김동환 김종영 박찬일 김진영 고강훈 조중생 노환중 김정수 김행재 홍기환 윤춘원 정완교 조진생 조현 조병우 조영채 윤성곤 김완길 나기상 박일동 윤강묵 서병도 성창섭 전시영 차창일 김중강 황순재 박순일 이정구 김리석 전경명 박춘근 강주원 박기현 박인용 백석인 송계원 이광선 윤상원 문영일 전병훈 장태영 조용범 윤용주 도남용 김춘길 신시옥 임현준 김선곤 고광련 정덕희 조중생 이상화 우광철 김종애 심윤상 천경두 62명.
1996 김선곤 김영일 안경성 박순일 성창섭 문영일 박찬일 강주원 임현준 박춘근 김종선 추광철 김희남 민양기 김영학 조중생 조현 고경환 노환중 조병우 김동환 김정수 조영채 김종영 김행재 윤성곤 김지연 홍기환 김완길 천경두 윤춘원 나기상 김진영 종환교 박일동 고강훈 조진생 윤강묵 차창일 김중강 황순재 이정구 김리석 전경명 박인용 백석인 송계원 이광선 윤상원 전병훈 장태영 조용범 윤용주 도남용 김춘길 신시옥 고광련 정덕희 조중생 이상화 김종애 심윤상 62명.
1997 김선곤 김영일 안경성 박순일 성창섭 문영일 박찬일 강주원 임현준 박춘근 김종선 추광철 김희남 민양기 김영학 조중생 조현 김창준 노환중 박노삼 김동환 김정수 조영채 김종영 김행재 윤성곤 김지연 홍기환 김완길 천경두 윤춘원 나기상 김영식 조성복 박일동 고강훈 조진생 윤강묵 차창일 김중강 황순재 이정구 김리석 전경명 박인용 백석인 송계원 이광선 윤상원 전병훈 장태영 조용범 윤용주 도남용 김춘길 신시옥 고광련 정덕희 조중생 이상화 김종애 심윤상 62명.
1998 강주원 고광련 김계숙 김광문 김광수 김광현 김길원 김리석 김성일 김영명 김영식 김영학 김영학 김유성 김장환 김종선 김종애 김종영 김춘길 김춘길 김희남 도남용 문영일 민양기 박기현 박순일 박인용 박찬일 박철원 박철원 박춘근 봉정표 성창섭 송계원 송달원 신시옥 안경성 안회영 여상원 오길상 오천환 왕수건 우훈영 윤강묵 윤성곤 윤용주 이광선 이상도 이상도 이상화 이상흔 이철희 임현준 장선오 장태영 장혁순 전경명 전시영 정명현 정성민 정필상 조승호 조일균 조재식 조중환 조태환 최종욱 추광철 한장연 홍원표 황순재
1999 강주원 고광련 김계숙 김광문 김광수 김광현 김길원 김리석 김성일 김영명 김영식  김영학 김유성 김장환 김종선 김종애 김종영 김중강 김춘길 김희남 김희남 도남용  문영일 민양기 박기현 박순일 박인용 박찬일 박철원 박철원 박춘근 봉정표 성창섭  송계원 신시옥 안경성 여상원 오길상 오천환 왕수건 우훈영 윤강묵 윤성곤 윤용주  이광선 이상도 이상화 이상흔 이철희 임현준 장선오 장태영 장혁순 전경명 전시영  정명현 정성민 정필상 조승호 조일균 조재식 조중생 조중환 조태환 최종욱 추광철  한장연 홍원표
2000 강주원 고광련 고한진 김계숙 김광문 김광현 김길원 김리석 김병주 김성일 김영명  김영식 김영학 김영학 김유성 김장환 김종선 김종애 김춘길 김춘길 김희남 김희남  나기상 남부현 동헌종 문성무 박찬일 박철원 박철원 백정환 봉정표 서병도 송계원  송달원 신시옥 신현일 안경성 엄재욱 여상원 오천환 왕수건 우훈영 윤용주 이강혁  이광선 이광선 이기영 이기영 이상도 이상화 이원상 이정권 이철희 임현준 장혁순  장혁순 장혁순 전경명 전시영 정성민 정필상 조   현 조용범 조일균 조중생 조중생  조중환 최종욱 추광철 한장연 홍원표
2001 고광련 권오선 김계숙 김광문 김광현 김길원 김리석 김병주 김성일 김영식 김영학  김유성 김장환 김종선 김종애 김중강 김춘길 김춘환 김홍수 김희남 김희택 나기상  남부현 도남용 동헌종 문성무 민양기 박찬일 박철원 박철원 백정환 봉정표 서병도  송계원 송달원 신시옥 신현일. 심상열 심윤상 안경성 안회영엄재욱 여상원 오천환  왕수건 우훈영 유태현 윤병용 윤석근 윤용주 이강혁 이광선 이광선 이기영 이상화  이상흔 이상흔 이원상 이정권 이철희 임현준 장철호 장혁순 전경명 전시영 정성민  정필상 조   현 조승호 조용범 조일균 조중생 조중행 조중환 최종욱 추광철 홍원표  황순재
2002 고광련 고의경 구수권 권오선 김경래 김광문 김리석 김민식 김성전 김수연 김영식  김영학 김용재 김재선 김종선 김종애 김중강 김춘길 김춘환 김형종 김홍수 김희남  남부현 노영수 도남용 동헌종 문성무 박기현 박재훈 박철원 박춘근 봉정표 서병도  설대식 송계원 송달원 신시옥 신현일 신현일 심윤상 안경성 안회영 엄재욱 여상원  오길상 오천환 왕수건 유태현 윤강묵 윤용주 이광선 이상덕 이상흔 이원상 이정권  이철희 장선오 장철호 전경명 전시영 정성민 정종진 정필상 조승호 조용범 조중생  최은창 추광철 홍기환 홍원표 황순대 황순재
2003 강성희 고광련 고의경 구수권 권오선 김동환 김리석 김수연 김영식 김영학 김용재  김재선 김종선 김종애 김종훈 김중강 김춘길 김헌구 김형종 나기상 도남용 문성무  박기현 박재훈 박철원 봉정표 서병도 설대식 송계원 송달원 신시옥 신현일 심윤상  안경성 안회영 엄재욱 여상원 오길상 오천환 왕수건 유태현 윤강묵 윤석근 윤용주  이강혁 이상흔 이정권 장선오 장철호 장혁순 전경명 전시영 정명현 정성민 정종진  정필상 조용범 조중생 차창일 천경두 최진택 추광철 홍원표
2004 고광련 고의경 구수권 권삼현 김리석 김민식 김상윤 김수연 김순웅 김용대 김재선  김종선 김종화 김중강 김춘길 김헌구 김희남 나기상 노영수 노환중 도남용 문성무  박기현 박동준 박재훈 박종대 박철원 반재철 백병준 백석인 성명훈 손수준 송계원  송달원 신승헌 신시옥 신창식 신현일 심상열 심윤상 양희찬 엄재욱 여상원 오길상  오천환 왕수건 윤강묵 윤용주 이강대 이강혁 이상흔 이원용 이정권 이흥만 장선오  장철호 장혁순 전경명 전시영 정광윤 정광윤 정명현 정성민 정필상 조용범 조중생  차창일 차흥억 천경두 최은창 최진택 추광철 한주호 홍성화 황순재
2005 고광련 고의경 구수권 국태진 권삼현 김광문 김대우 김리석 김민식 김승현 김영모  김용대 김종선 김종화 김헌구 김희남 나기상 노영수 노환중 도남용 문성무 박기현  박동준 박종대 박철원 박혁동 백병준 백석인 손수준 송달원 송선복 신승헌 신시옥  신창식 심상열 심윤상 양훈식 양희찬 엄재욱 오승하 오천환 윤강묵 윤용주 이강대  이강혁 이봉재 이상흔 이원용 이의석 이재훈 이정권 이흥만 장선오 장혁순 전경명  전병훈 전시영 전준배 정광윤 정필상 조병우 조용범 조   현 차창일 차흥억 천경두  최은창 최정현 최종욱 최종철 최홍식 추광철 한주호 홍남표 홍석찬 홍성수 홍성화  홍종협 황순재
2006 고의경 구수권 국태진 김광문 김광문 김광현 김대우 김리석 김승현 김영모 김영모  김용대 김종선 김헌구 김희남 나기상 나한조 노영수 노환중 도남용 문성무 박기현  박동준 박종대 박철원 박혁동 배정보 백병준 백석인 봉정표 손수준 송달원 송선복  신승헌 신시옥 신창식 심상열 심윤상 양훈식 양훈식 엄재욱 오성근 오승하 윤강묵  윤용주 윤주헌 이강대 이병돈 이봉재 이봉재 이상흔 이상흔 이원용 이의석 이재훈  이정권 이철희 임상철 장선오 장혁순 전경명 전병훈 전시영 전시영 전준배 정광윤  정필상 조   현 조병우 조용범 차창일 천경두 최정현 최종욱 최종철 최홍식 추광철  한주호 홍남표 홍성수 홍성화 황순재
2007 회기 변경으로 이사회 개최 안함
2008 강명구 강성호 강성희 고건성 구수권 권오선 김경래 김경수 김광문 김광현 김대우  김민식 김상현 김승현 김영모 김용대 김용재 김정수 김진평 김희남 나기상 노환중  도남용 동헌종 문유보 박동준 박병철 박성국 박한규 박혁동 백병준 송선복 신승헌  신시옥 심상열 심윤상 안병훈 양훈식 윤성곤 윤용주 윤주헌 이강대 이병돈 이상덕  이상흔 이석규 이원상 이원용 이의석 이재서 이재훈 이정권 이준한 이철희 장선오  장태영 장혁순 전경명 전영명 전준배 정명현 정완교 정원호 정필상 정하원 조영채  조용범 조진희 차창일 채성원 천경두 최승호 최종욱 최종철 태   경 홍성수 홍일희  홍종협 황순재
2009 강명구 강성호 강성희 고건성 고광련 구수권 권삼현 권오선 김경래 김경수 김광문  김광현 김대우 김민식 김상현 김승현 김영모 김용대 김용재 김정수 김진평 김희남  나기상 노환중 도남용 동헌종 문유보 박기현 박동준 박병철 박성국 박한규 박혁동  백병준 송선복 신승헌 신시옥 신창식 심상열 심윤상 안병훈 양훈식 오승하 이강대  이광선 이병돈 이상덕 이상헌 이상흔 이석용 이시영 이원용 이의석 이재서 이정권  이철희 장선오 장태영 장혁순 전경명 전영명 전준배 정도광 정명현 정완교 정원호  정필상 정하원 조성일 조영채 조용범 조진희 차창일 채성원 최승호 최은창 최종욱  최종철 태경 홍성수 홍일희 홍종협 황순재
2010 강명구 강성호 구수권 권기환 권삼현 김경수 김광문 김광현 김규성 김선태 김성식  김세헌 김영석 김용대 김종훈 김주형 김진평 김형옥 김희남 나기상 남순열 노환중  도남용 동헌종 문문만 박경유 박기현 박동준 박병일 박병철 박성국 박일동 박하춘  박한규 백병준 백석인 백정환 선동일 송병호 송시연 신시옥 신창식 심상열 안병훈  양훈식 예미경 오승하 윤양효 이강대 이광선 이상덕 이상헌 이상흔 이시영 이영환  이원상 이원용 이의석 이일우 이정권 이철희 장경호 장선오 장용주 장혁순 전시영  정도광 정명현 정상호 정성민 정연훈 정원호 정필상 조남훈 조성운 조용범 조진희  차창일 채성원 최은창 태   경 하정도 홍기환 홍남표 홍석경 홍성수 황순재
2011 강명구 강성호 고의경 구수권 권기환 권삼현 김경수 김광문 김광현 김규성 김선태  김성식 김세헌 김영모 김영석 김용대 김용민 김종훈 김주형 김진평 김형옥 나기상  남순열 노환중 도남용 동헌종 문문만 박기현 박동준 박병일 박병철 박성국 박일동  박철원 박하춘 박한규 박희완 백병준 백석인 백정환 봉정표 선동일 송병호 송시연  신시옥 신창식 심상열 안병훈 양훈식 예미경 오승하 이강대 이상덕 이상흔 이시영  이영환 이원용 이의석 이익재 이재훈 이정권 이철희 장경호 장선오 장용주 장혁순  정도광 정명현 정상호 정성민 정연훈 정원호 정필상 조남훈 조용범 조진희 채성원  최은창 태   경 하정도 한태희 홍기환 홍남표 홍석경 홍성수 황순재
2012 강명구 강성호 고의경 구수권 권삼현 권순영 김경수 김광현 김규성 김선태 김영모  김영석 김용민 김정규 김정수 김지우 김진평 김창훈 김현중 김형태 남성일 노영수  노환중 도남용 동헌종 문문만 박기현 박동선 박병철 박성국 박일동 박종대 박창식  박철원 박하춘 박한규 박홍준 백병준 백정환 손영익 신창식 심상열 양윤수 양훈식  오일준 유창용 윤주헌 이강대 이규엽 이병주 이상덕 이상흔 이영환 이원용 이재서  이재훈 이정권 이준호 이철희 이화식 장선오 장혁순 정도광 정연훈 정원호 정유삼  정종우 정필상 조남훈 조용범 조재홍 조진희 최득록 최영석 최은창 태   경 하정도  한태희 허   웅 홍성수
2013 강성호 강학준 구수권 권순영 권재환 김경수 김규성 김리석 김선태 김영모 김영석  김용민 김정규 김정수 김지우 김진평 김창훈 김태현 김현중 김형태 나기상 남성일  도남용 동헌종 문문만 박기현 박동선 박병철 박상열 박일동 박종대 박창식 박철원  박하춘 박한규 박헌수 박홍준 백무진 백정환 손영익 신창식 심상열 양윤수 양훈식  여상원 유창용 윤주헌 이광선 이규엽 이병주 이상덕 이상흔 이영환 이원용 이일우  이재서 이재훈 이정권 이준호 이철희 이화식 장선오 장혁순 정도광 정연훈 정원호  정유삼 정종우 정필상 조용범 조진희 지동하 최득록 최영석 최은창 태   경 하정도  허   웅 홍기환 홍성수
2014 강상훈 강성호 구수권 구자원 권용진 권재환 김경수 김규성 김규식 김기환 김동은  김동호 김선태 김성식 김용민 김위황 김익태 김정수 김창규 김창훈 김철호 김효경  나기상 도남용 동헌종 문문만 문인희 박기현 박상열 박창식 박헌수 박홍준 백병준  백정환 봉정표 손진호 신승헌 신창식 안성기 양윤수 양훈식 여상원 여승근 우정수  원준연 유동희 유창용 윤자복 이권형 이규엽 이병돈 이병주 이승환 이원용 이일우  이재훈 이정권 이철희 임현우 장선오 정광윤 정도광 정연훈 정원호 정유삼 정필상  조광재 조양선 조용범 조진희 조창현 조형호 채성원 최명수 최영석 최은창 태   경  한창준 허   웅 홍기환 홍현정 황성재
2015 강상훈 구수권 구자원 권재환 김규성 김규식 김도일 김동은 김동호 김선태 김성식 김용민 김위황 김익태 김정수 김창훈 김철호 김효경 나한조 남정권 노환중 도남용  동헌종 문문만 문인희 박상열 박창식 박헌수 박홍준 백무진 백병준 백정환 봉정표 손진호 신승헌 신시옥 신창식 안성기 여승근 오승하 우정수 원준연 유동희 유창용 윤영석 윤용주 이강대 이권형 이규엽 이병돈 이병주 이상학 이승환 이은정 이재훈 이정권 이진춘 이철희 임현우 정도광 정연훈 정원호 정유삼 정종우 정필상 조광재 조양선 조용범 조진희 조창현 조형호 채성원 최명수 최영석 최은창 태   경 하상욱 한창준 홍기환 홍현정 홍현준 황성재
2016 강상훈 고윤우 권기환 권장우 권재환 김규성 김규식 김동균 김민식 김병철 김선태  김세헌 김용대 김용민 김용범 김위황 김익태 김정규 김정수 김진국 김진평 김창동  김철호 김현조 노환중 도남용 문문만 박경호 박동선 박문흠 박미향 박상열 박선태  박헌수 배창훈 백무진 백병준 백승국 백정환 변재용 서영준 송병호 신광철 신승헌  신시옥 안성기 양승덕 양훈식 오승하 유동희 유철진 이강대 이국행 이승환 이승훈  이은정 이재훈 이정권 이종철 이준호 이진춘 이철희 이흥만 정종우 정필상 조광재  조규섭 조양선 조용범 조창현 주형로 지용배 최승호 최영석 최은창 최재진 태   경  한창준 홍기환 홍일희 홍현준 황찬호
2017 강상훈 고윤우 권기환 권장우 김규성 김규식 김병철 김선태 김세헌 김용대 김용민  김용범 김익태 김정규 김정수 김진국 김진평 김창동 김철호 김현조 노환중 도남용  문문만 박경호 박동선 박문흠 박미향 박선태 박헌수 배창훈 백무진 백병준 백승국  백정환 변재용 서영준 손진호 송병호 신광철 신승헌 신시옥 심홍섭 안성기 양승덕  양훈식 유동희 이강대 이국행 이성구 이승환 이승훈 이은정 이재서 이재훈 이종철  이준호 이진춘 이철희 이환호 이흥만 임상철 정성민 정종우 정필상 조광재 조규섭  조양선 조용범 조창현 주형로 지용배 최난금 최승호 최영석 최은창 최재진 태   경  한창준 홍기환 홍일희 홍현준 황찬호
2018 강석태 고윤우 구자원 김규성 김규식 김동규 김동영 김병국 김병철 김선태 김용대 김용민 김정규 김정수 김진국 김창훈 김철수 김해송 김현조 노환중 도남용 동헌종 문동숙 박경호 박광헌 박미향 박상호 박선태 배우용 배창훈 백무진 백병준 백승국 백정환 변재용 송병호 신광철 신시옥 심우섭 안성기 안영진 예미경 유동희 윤준식 이병돈 이성구 이세영 이승훈 이은정 이일우 이재서 이재훈 이종철 이준규 이준호 이진춘 이철희 이호준 이환호 임구일 임상철 장은기 정광윤 정주용 정필상 조광재 조규섭 조양선 조용범 조진희 조창현 지용배 채성원 최승호 최은창 최재진 태 경 한창준 홍일희 홍현준
황찬호
2019 강석태 고윤우 구자원 권삼현 김규성 김규식 김동규 김동영 김병국 김병국(서울) 김병철 김선태 김승찬 김영모 김용대 김용민 김정규 김정수 김진국 김창훈 김현조 노환중 박경호 박광헌 박기호 박미향 박상호 박선태 박시내 박일석 박정제 배우용 배창훈 백무진 백승국 백정환 변재용 송병호 신광철 신시옥 심우섭 안영진 예미경 유동희 윤준식 이세영 이승훈 이은정 이일우 이재서 이재훈 이종철 이준호 이진춘 이치규 이호준 이환호 임구일 임상철 장문수 장은기 정광윤 정주용 정필상 조광재 조규섭 조성일 조양선 조용범 조진희 조창현 지용배 채성원 최승호 최은창 최재진 최지윤 태 경 한창준 홍일희 홍현준 황찬호

역대 대한이비인후과학회학회

1966년 이전은 대한이비인후과학회학회장이 대한이비인후과학회 학술대회장을 겸임하였으나, 1966년 10월 9일 개정된 회칙에 의하여 1967년부터는 부회장 3인중 2인을 지방소재 병원에서 선임한 후 지방에서 개최되는 춘계학술대회를 주관하도록 하여, 제 33차 학술대회부터 시행되었다. 추계학술대회는 계속 대한이비인후과학회학회장이 주관하였다.

1975년 10월 11일 이사장제도가 신설됨에 따라 대한이비인후과학회학회의 학회 업무는 이사장이 관장하였고, 학술대회의 업무는 제 50차 추계학술대회부터 회장이 관장하였다.

1995년 11월 30일 회장제가 폐지되고 단일 이사장제도가 발족됨으로 인하여 춘계는 대한이비인후과학회학회 종합학술대회로 개최하기로 하였고, 추계는 대한이비인후과학회학회 학술대회로 개최하기로 하였다. 춘계 대한이비인후과학회학회 종합학술대회는 이사장이 학술대회의 자문역을 맡고 학술대회장은 조직위원장이 되어 학술대회 제반사항을 관장하였다. 또한 조직위원회는 학술대회장, 학술이사, 각 연구회장, 분과학회장, 개회지 지부장으로 구성되었다. 추계 대한이비인후과학회학회 학술대회는 학술대회장이 제반업무를 관장하되 학술이사가 학술대회 제반업무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역대 학술대회장

역대 학술대회장

학술대회 일 시 학술대회장
1-32 차 생 략 회장이 겸임
33 차 1967.5.7 이 양 선
35 차 1968.5.5 남 영 소
37 차 1969.6.7 송 규 현
39 차 1970.5.10 조 진 규
41 차 1971.5.8 백 준 기
43 차 1972.5.6 장 인 원
45 차 1973.4.23 소 진 명
47 차 1974.5.25 김 병 우
49 차 1975.6.14 지 중 민
50-69 차 생 략 회장이 겸임
70 차 1996.10.25-26 박 춘 근
71 차 1997.10.24-25 송 계 원
72 차 1998.10.31-11.1 김 춘 길
73 차 1999.10.28-30 서 병 도
74 차 2000.10.6-8 김 중 강
75 차 2001.10.12-14 심 윤 상
학술대회 일 시 학술대회장
76 차 2002.10.25-27 차 창 일
77차 2003.10.10-11 이 상 흔
78차 2004.10.29-31 김 광 문
79차 2005.10.21-23 김 광 현
80차 2006.10.27-29 정 명 현
81차 2007. 4. 27-29 장 선 오
82차 2008. 4.25~27 이 정 권
83차 2009. 4.24~26 박 기 현
84차 2010. 4.23~25 이 원 상
85차 2011. 5.1~3 박 철 원
86차 2012. 4.27~29 노 영 수
87차 2013. 4.26~28 이 광 선
88차 2014. 4.26~28 양 훈 식
89차 2015. 4.24~26 이 상 학
90차 2016. 4.22~24 김 민 식
91차 2017. 4.21~23 정 성 민
92차 2018.4.27~29 동 헌 종
93차 2019.4.25~28 김 영 모

역대 종합학술대회장

종합학술대회 일 시 종합학술대회장
초대 1996.4.26-4.28 김 종 선
2 대 1967.5.7 이 양 선
3 대 1997.4.25-4.27 추 광 철
4 대 1998.4.25-4.26 황 순 재
5 대 1999.4.30-5. 1 조 태 환
6 대 2000.4.21-4.22 이 정 구
7 대 2001.4.27-4.28 전 경 명
8 대 2002.4.24-4.25 장 혁 순
9 대 2003.4.25-26 조 승 호
10 대 2004.23-24 안 회 영
11 대 2005.4.22-23 송 달 원
12 대 2006.4.21-22 이 형 석
13 대 2007. 10. 26-27 엄 재 욱
14 대 2008.10.24~25 조 중 생
15 대 2009.10.23~24 왕 수 건
16 대 2010.10.29~30 전 시 영
17 대 2011.10.20~21 봉 정 표
18 대 2012.10.19~20 도 남 용
19 대 2013.10.11~12 김 리 석
20 대 2014.10.10~11 나 기 상
21 대 2015.10.23~24 윤 용 주
22 대 2016.10.28~29 신 시 옥
23 대 2017.10.20~21 손 진 호
24 대 2018.10.12~13 이 병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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